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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여행자의 모래시계 - JM 북스
호죠 기에 지음, 김지윤 옮김 / 제우미디어 / 2024년 4월
평점 :
"류젠 가의 저주를 한 번 풀어 보시겠습니까?
원하신다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네가 뭘 할 수 있다고. 아내의 병은 ······."
"저주를 풀 사람은 제가 아니라 가모 씨 자신입니다.
당신에게 그럴 각오만 있다면 불가능한 일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너, 대체 정체가 뭐야."
"저는 마이스터 호라라고 합니다."
"그건 미하엘 엔데가 쓴 '모모'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잖아. 시간 여행자였나?"
"네, 그게 접니다."
(30p)
《시공여행자의 모래시계》는 호죠 기에 작가의 본격 추리 소설이에요.
이 소설은 굉장히 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진 큐빅 같아요. 처음엔 '저주'라는 미스터리 요소로 시작해 '시공간여행'이라는 SF적인 장치(기적의 모래시계)를 통해 2018년 시점에 살고 있는 주인공 '가모'는 1960년 8월 22일 류젠 가문의 별장으로 순간이동을 하게 돼요. 앞서 '저주'의 근원은 '가모'의 아내인 류젠 레나의 집안 이야기인데, 한 사건을 계기로 저주를 받은 듯 가문 사람들이 차례로 목숨을 잃는 일이 벌어졌고, 레나 역시 두려움에 떨며 살다가 가모를 만나 결혼한 뒤 겨우 안정을 찾았는데 갑자기 희귀질환에 걸려 의사로부터 3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얘길 들으니 류젠 가의 저주를 떠올리게 된 거예요. 저주는 무슨, 말도 안 된다고 여기는 가모에게 '마이스터 호라'가 나타나 아내 레나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한 거예요.
과거로 돌아가 류젠 가의 저주를 풀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된 가모는 류젠 다이가의 증손녀인 아야카(13세)의 도움을 받아 살인범을 쫓게 되는데, 추리 소설의 고전적인 트릭이자 강력한 치트키라고 할 수 있는 밀실 살인, 즉 고립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으로 정신을 쏘옥 빼놓네요.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마이스터 호라'의 존재예요. 사실 소설의 첫 장은 '마이스터 호라가 여는 서문'으로 시작되거든요. "지금부터 여러분께 들려 드릴 이야기는 '저주'와 '기적'에 관한 것입니다. (···) 저는 주인공의 여행을 이끄는 안내자이자 방관자이며 액운을 가져오는 역신이자 축복의 신입니다. 모순되게 들리겠지만 전부 사실입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선언하건대 제가 작중에서 거짓말을 하거나 독자 여러분을 속이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가 하는 말이 터무니없이 들린다고 도전을 망설이진 마십시오. 어쩌면 이런 의문을 품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 작중에서 '마이스터 호라'라고 자칭하는 자는 가짜이고 거기에 서술 트릭이 숨겨져 있는 게 아닐까?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마이스터 호라는 제가 틀림없으니까요." (11-12p) 분명하게 마이스터 호라가 밝혔는데도 막상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추리게임에 빠져들어 본질을 살짝 잊게 되는 면이 있어요. 그만큼 흥미롭고 놀라운 수수께끼로 가득찬 미스터리 세계를 만날 수 있어요. 마이스터 호라에 이어 D 카시오페이아의 등장까지 미하엘 엔데 작가님의 <모모>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익숙한 듯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어쩐지 기적의 모래시계는 다음 이야기로 우리를 찾아올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