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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 ㅣ 앤드 산문집 시리즈
이소연 지음 / &(앤드) / 2024년 4월
평점 :
"문학 없는 삶을 생각하면 몹시 삭막하지만,
문학보다 중요한 삶이 도처에 있다는 건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시인이 되어서 즐겁다는 것이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인이 되고 싶었다.
초등학생 때 장래 희망을 적는 날에 시인이라고 적은 아이는 나 하나뿐이었다." (6p)
중학교 시절 백일장을 앞두고 시 부문을 준비하던 친구가 떠올랐어요. 아니, 그 친구를 바라보며 '어떻게 시가 쓰여지는 거지?'라며 궁금했던 그때가 생각났어요. 아쉽게도 친했던 아이가 아니라서 시에 대해서도, 장래 희망에 대해서도 물어보질 못했지만 어디에선가 시인으로 살고 있을 모습을 상상하며 이 책을 읽었어요.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는 이소연 시인의 산문집이에요.
이 책은 시인이 들려주는 일상과 시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시인으로 살며, 이런저런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만, 괜찮다. 마음만큼 잘되진 않아도 망한 적은 없다. 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심사도 하고, 낭독회도 꾸준히 한다. 동네 책방에서 독자들과 만나는 일은 시인의 일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시로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날 설레게 한다." (7p) 어쩐지 시인의 삶이 가까운 이웃의 모습 같아서 친근하게 느껴졌어요. 사실 시인이라고 해서 보통의 삶과 다를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막연하게 시인의 이미지를 상상했던 것 같아요. 시인은 일상에서 보고 느끼는 것들이 무엇인지, 어떤 것을 시로 쓰고 싶고, 시를 쓰면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은지, 왜 시를 읽고 쓸 수밖에 없는지를 들려주고 있어요. "나만이 쓸 수 있는 시, 그 누구만이 쓸 수 있는 어떤 시가 한 사람의 마음을 열고 걸어 들어가는 상상을 한다. 시를 읽는 사람들이 문장마다 멈추어 서서 그 문장이 가져다 주는 떨림에 몰입하고 매달리고 질문하고 감탄하기를 바랐다. 호들갑 떠는 일이 은근히 재미있기 때문이다. 고요한 호들갑. 점잖은 사람들의 내면에도 감탄과 경탄의 호들갑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시간이 좋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말은 왜 우리가 한 권의 책보다 단 하나의 문장에 더 집중해야 하는지 깨닫게 한다." (29-30p) 시인의 글을 읽다보면 '설렘, 떨림, 호들갑, 감탄'이라는 단어가 크게 와닿더라고요. 순수한 아이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그 마음이 한 편의 시가 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 단어가 있다면 '포란(抱卵)'이다. 동물이 알을 품는 행위를 뜻하지만, 나는 이 단어를 봄과 나란히 둔다. (···) 얼마 전 '듀엣 낭독회'에서 만난 고명재 시인이 떠오른다. 낭독을 듣다가 그렇게 울어 본 적이 없었는데, 나뿐만 아니라 함께 듣던 많은 사람이 울었다. 마지막으로 산문을 낭독했을 때는 그 숱한 『슬픔의 방문』에도 울지 않던 장일호 작가가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사람이 사람을 품었다고밖에 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그 장면이 나를 다시 울렸다. 그 자리에 모인 우리가 함께 울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내 안의 깊숙한 응달 속에 남아 있던 눈덩이가 따스하게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128-129p) 한때는 울지 않아야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마음이 울리면 수도꼭지마냥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오히려 따뜻한 눈물을 흘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감동을 준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그저 예뻐서 마음에 품는다'는 시인의 마음이 좋았어요. 우리가 아름답고 예쁜 것들을 더 많이 마음에 품을 수 있기를, 그러기 위해 시를 읽어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