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이사항 보고서 네오픽션 ON시리즈 21
최도담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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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이 장소였을까요, 다른 곳이 아닌 이곳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검은 복면을 쓰고 묵직한 엽총을 든 두 명의 남자가 등장한 곳은 지역 고용복지센터 내의 실업급여과예요. 굉장히 이질감이 드는 첫 장면으로 이 소설은 시작되고 있어요. "왜 여기에 왔는지 궁금하지?" (10p)라고 남자는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네, 맞아요. 바로 그 궁금증 때문에 얼른 다음 장을 넘기고 있으니 말이에요. 금요일 퇴근 시간을 앞둔 직원들 입장에선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상황인 거예요.

《특이사항 보고서》 는 최도담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이 소설을 읽다가 문득 로또 추첨 장면이 떠올랐어요. 투명한 구 안에 숫자가 적힌 공들이 빙글빙글 돌다가 무작위로 공 하나를 뱉어내는 거예요. 불확실성이 주는 행운을 반대로 뒤집어보면 우리가 겪는 불행과 많이 닮아보여요. 더 나쁜 건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거예요. 미리 준비할 수도 없으니 피할 방법도 없어요. 그저 약하게 지나가기만을 바랄 뿐이죠. 참으로 고약한 것 같아요. 불행의 주인공으로 뽑힌 사람은 실업급여과 4번 창구 직원인 서이안이며, 이상하고 특별한 상황에 처한 이안의 시선을 통해 숨겨진 구석구석의 사연들을 보여주고 있어요. 처음엔 검은 복면의 두 남자가 실업급여과에 총을 들고 온 이유가 궁금했다면 총이 발사된 이후에는 그 이유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날 복면들은 타인의 삶과 죽음을 가르는 무시무시한 위치에 있었고, 희생자는 무작위로 선택되고 말았어요. 그래서 범인들의 동기와 목적은 무용지물이 된 거예요. 재난은 이미 사람들을 흔들고 무너뜨리고 있는데, 우리는 실제로 직면하기 전까지는 뭘 해야 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어요. 거대한 세상과 비교하면 실업급여과라는 공간은 너무나 협소하지만 그 사건이 벌어진 순간, 결코 마주치고 싶지 않은 현실이 보였어요. 우리가 분노해야 할 대상은 누구이며, 누구를 위해 슬퍼해야 하는 걸까요. 그런 의미에서 '특이사항 보고서'는 언제 어디선가 잠재적 복면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우리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네요. "삶의 불확실성 속에서라면 어떤 상상도 가능했다." (258p) 라는 이안의 말처럼 우리는 버터내야 해요. 막막하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한 발을 내디뎌 나아가야 해요.


"삶 속에는 다양한 괴물들이 존재했다.

불행하게도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괴물들을 마주하기도 했다.

선한 인간을 만나는 것보다 괴물을 피하는 것이 인생이 베푸는 호의였다." (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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