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 없음 - 삶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위해 쓴 것들
아비 모건 지음, 이유림 옮김 / 현암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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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운가요, 아니면 설레나요.

당장 몇 분 뒤에 일어날 일을 모른다고 해서 걱정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계획했던 일이 틀어질 때도 있지만 대부분 생각했던 대로 흘러가는 일상을 보내고 있으니까요.

아비 모건은 영국의 유명 극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라고 해요.

《각본 없음》은 아비 모건의 삶에 관한 책이에요.

저자는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여성으로 상을 받기도 했고, 두 아이를 키워냈고 매일매일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었다고 해요.

사랑하는 남자인 제이콥과는 18년을 함께 살았지만 결혼을 하진 않았고, 제이콥이 쓰러지기 전까지는 별다른 문제가 되질 않았죠.

"나는 이야기의 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 끝을 알지 못하면 걷잡을 수 없이 불안하고, 무기력하고, 두려워진다." (15p)

직업적으로 늘 끝이 명확한 이야기를 완성했던 저자가 어느 날 갑자기 닥친 불행한 일들로 인해 삶의 모든 것들이 뒤바뀌게 되었어요.

"제이콥이 쓰러지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다.

이 재앙이 벌어진 후의 삶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

'대앙, 재앙, 재앙 ···. 최악이야.'

최악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훨씬 더 큰 감정은 ···.

슬픔이다. (55p)

소설이었다면 주인공이 겪는 불행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크게 마음 아프진 않았을 거예요. 근데 현실은,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잔인하게 마음을 후벼파네요. 가장 슬프고 비참한 순간들, 그건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일 텐데 저자는 그 모든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어요. 만약 영화 시나리오라면 주인공의 불행은 다음 도약을 위한 발판일 뿐, 결국에는 해피엔딩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 인생은 영화가 아니고, 불행은 파도처럼 연달아 몰려와 기어이 쓰러뜨리고 만다는 걸, 살다보니 알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자가 느끼는 감정들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제이콥과 나의 스캔 사진 모두에서 기묘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내 가슴의 종양은 조직과 피부를 나타내는 하얀 층에 검은 구멍으로 나타난다.

제이콥 뇌의 좌엽과 우엽,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을 통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해마 주변의 어두운 부분은 마치 오래도록 아무도 닿지 못한, 잊힌 은하계처럼 보인다." (204p)

절망과 좌절, 그리고 고통으로 채워진 삶에서 저자는 어떻게 버텨낼 수 있었을까요. 사랑하는 제이콥은 아비 모건의 기억을 잃었지만, 아비 모건은 아픈 제이콥을 끝까지 붙잡아주었고, 그녀 곁에는 그녀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텅 빈 마음을 채워주는 건 역시 사랑이구나, 또한 감사하는 마음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네요. 사나운 파도를 피할 순 없지만 가끔은 그 파도 위에 올라탈 수 있어서, 삶은 계속되는 것 같아요. 인생이라는 영화는 미리 각본을 쓸 수 없지만 주인공답게 어떤 상황에서든 멋지게 살아낼 수 있다는 걸, 아비 모건을 통해 배웠네요.



감사한 사람들은 또 있다.

내게 얼마나 고마운 일을 해줬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

어느 날에는 우리 집 길목에 있는 여우 배설물을 나 대신 치워주는 이웃의 모습을 봤다.

결국, 나를 다시 나로 돌아오게 하는 것, 내가 누구인지 다시 깨닫게 해주는 것은 이렇게 작은 일들일 것이다.

그리고 그중 어떤 것들은 제이콥에게도 자석처럼 자기장을 뻗쳐줄 것이다.

제이콥이 어디에 있든. (214p)


"나는 괜찮아, 제이콥. 우리는 살아남았고,

나는 그 대단한 아비 모건이잖아!

생존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살아갈 수 있어야지!" (2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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