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들의 죽음 - 소크라테스에서 붓다까지 EBS CLASS ⓔ
고미숙 지음 / EBS BOOKS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크라테스, 장자, 간디, 아인슈타인, 연암과 다산, 사리뿟따와 붓다.

이들 사이의 공통점은? 딱히 없다.

코로나19를 통과하면서 공부의 테마를 '지성에서 영성으로!' 전환하게 되었고,

(···) 삶의 지혜와 비전을 온몸으로 구현해 낸 위대한 스승들의 죽음에 주목했다.

이들의 죽음에는 공통점이 있다. 생사의 관문을 지극히 경쾌하게 통과했다는 것." (7p)


《현자들의 죽음》은 고전평론가 고미숙 님의 책이에요.

이 책은 EBS 클래식 e 에서 인문 강의를 해주신 고미숙 님의 '죽음의 인문학'에서 탄생했어요.

사람들은 다들 어떻게 사느냐만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살 것인가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와 분리할 수 없는 주제이기에 동서양의 고전에서도 '생사는 하나'라는 진리가 전해져 온 거예요. 그럼에도 죽음이라는 주제를 못 본 척하거나 꺼려왔던 건 마주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가 부족했기 때문일 거예요. 저자는 우리 시대가 죽음을 탐구하기 딱 좋은 시대라면서, 철학과 종교, 과학 분야를 망라하는 여덟 명 현자들의 어록과 기록을 통해 죽음을 탐구하고 있어요. 어떤 죽음이 좋은 죽음일까요.

소크라테스는 그의 철학만큼이나 죽음으로도 유명하죠. "전혀 두려움 없이 고귀하게 삶을 마감하셨습니다." (31p)라고 제자 파이돈은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하기 직전과 이후의 모습을 기록했어요. 소크라테스의 사형은 아테네 시민들과 민주정에게는 크나큰 비극이었지만 그 죽음을 통해 시공을 넘어 현재까지 인류사에 큰 비전을 제시했다니 위대한 철학자다운 최후였네요.

아내가 죽고, 벗들이 죽고, 노자가 죽고, 드디어 장자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왔을 때에 제자들이 어떻게 장례를 치러야 하느냐고 묻자, "나는 하늘과 땅을 널로 삼고, 해와 달을 행렬의 장식 옥으로 삼고, 별들을 죽은 자의 입에 물리는 구슬로 삼고, 이 세상 만물을 저승길의 선물로 삼으련다. 나의 장례용품이 이미 다 갖추어져 있는데 무엇을 여기에 덧붙이겠는가?" (99p)라고 답했다고 해요. 삶에 대한 미련이나 회한 따위는 전혀 없이, 훌훌 육신의 굴레를 벗어나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에서 장자다움이 느껴져요.

간디가 죽은 뒤에 남긴 것은 시계 하나, 상아로 만든 작은 원숭이 세 마리, 그리고 책 몇 권이 전부였다고 해요. 암살범의 총탄에 맞아 생을 마감한 간디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고, 죽음은 삶의 모든 짐 혹은 운명이 부여한 다르마에서 벗어나 신의 곁으로가는 영광스러운 해방이라고 여겼던 거예요. "언제든 죽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영적 수련의 핵심이었다. (···) 죽음 또한 그저 한 걸음일 따름이다.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넘어가는 단 한 걸음!" (138p) 이러한 경지에 오르긴 쉽지 않겠지만 우리의 삶도 역시 한 걸음씩 나아간다는 건 변하지 않는 진리네요.

누군가 아인슈타인에게, "불멸을 믿는가?"라고 묻자, "아닙니다. 나에게는 한 번의 삶으로 충분합니다." (175p)라고 답했다고 하네요. 그가 사망했을 때 그의 침대 곁에는 이스라엘 독립 기념을 위한 연설문의 연고가 놓여 있었지만 그는 이스라엘이 이웃한 중동의 여러 국가와 조화롭게 사는 길을 열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했대요. 연설문은 "오늘 나는 여러분에게 미국 시민이나 유대인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이야기합니다." (174p)로 시작된대요. 인간으로서의 삶과 죽음,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연암 박지원의 유언은 '깨끗이 목욕시켜 달라'는 것뿐이었대요. 일찍부터 수많은 죽음을 겪었던 그는 늘 죽음을 준비하고 있었고 회한이나 미련 없이 담백한 죽음을 맞았으니 참으로 한결같은 인물이었네요.

다산 정약용은 "천리는 돌고 도는 것이니 한 번 넘어졌다고 반드시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1810년 초가을) (255p)라고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적었는데, 그의 말처럼 죽은 지 백 년 뒤인 1936년 다산학회가 구성되었고 다산은 조선학의 주춧돌이자 대명사가 되었네요. 다산이라는 이름은 그의 사상적 업적이 대부분 유배지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래요. 반드시 다시 일어나고야 말겠다는 다산의 정신을 되새겨야겠어요.

사리뿟다는 머나먼 과거에 붓다의 상수제자가 되기를 서원했는데 기나긴 윤회를 거쳐 그 뜻을 이루게 되었고 사리뿟다가 열반에 들었을 때, 붓다는 이미 열반으로 가는 머너먼 여정의 한가운데 있었다고 해요. 또 한명의 상수제자 목갈라나도 열반에 들었는데 이 세 분의 마추침과 인연은 모든 중생에게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 되었다고 해요. 붓다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입적한 뒤 설법에서 그들이 떠난 자리는 텅 비었지만 슬픔도 없고 비탄도 없다면서, "그대들 자신이 섬이 되어라. 그대들 스스로가 자신의 귀의처가 되어라." (294p)라는 말씀을 남겼네요. 저자는 윤회와 열반은 현재 인류가 창안해 낸 죽음과 다음 생에 대한 최고의 해석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죽음에 대한 탐구를 이어갈 만한 주제를 찾은 것 같아요. 죽음을 두려워하는 태도에서 벗어나 명랑하고 심오하게 접근할 수 있는 철학 입문서였네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