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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 위의 삶 - 뇌종양 전문 신경외과 의사가 수술실에서 마주한 죽음과 희망의 간극
라훌 잔디얼 지음, 정지호 옮김 / 심심 / 2024년 1월
평점 :
"나는 환자의 뇌에 칼을 대는 의사다." (9p)
《칼날 위의 삶》은 뇌종양 전문 신경외과 의사이자 뇌과학자 라훌 잔디얼의 책이에요.
우리가 알고 있는 의사의 이미지는 대체로 냉정하고 무뚝뚝해서 쉽게 다가가기 어렵다는 거예요. 더군다나 외과의사는 수술을 받는 환자나 보호자가 되어 만나기 때문에 왠지 더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근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적인 면모를 새롭게 마주할 수 있었네요.
저자는 사람의 몸에서 악성종양을 제거하는 외과의사로서 40대인 지금까지 1만 5천 명 이상의 환자를 만났고 4천 건 이상의 수술을 진행해왔다고 해요. 외과의사는 환자보다는 그 환자가 받을 수술에 더 관심이 많기로 유명하지만 저자는 한번도 그런 식으로 수술을 한 적이 없다고 이야기하네요. 저자에게 있어서 수술이란 인체 해부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에 관한 탐구였다면서, 뇌 손상을 입은 환자를 치료하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난해한 상황과 끔찍한 선택에 직면해야 했던 순간들, 그 고통과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뇌종양 전문 신경외과 의사로서 할 일은 수술 이전에 환자에게 암 진단 결과를 알려줘야 하는데, 대부분의 환자들이 암 선고를 받는 자체가 트라우마가 된다고 해요. 병상에 있는 환자에게 검사 결과를 알려줄 때, 저자는 보통 침대 측명으로 가서 환자가 문 쪽을 보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도록 한다고 해요. 그 이유는 문을 바라보는 건 방금 들은 내용을 회피하고자 하는 환자의 전형적인 발뺌 수법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환자에게 암 진단을 내릴 때는 자신이 말하는 내용이 진실이며 암이라는 얘기를 해야 해서 마음이 아프다는 뜻을 모두 전달하고 싶은 표정으로 소식을 전하는데, 대부분 침묵이 흐른다고 해요. 우리는 흔히 삶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는 경험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일어난다고 해요. 저자가 뇌종양이나 생명을 위협하는 다른 질병으로 인해 실존적 위협에 처한 환자들의 마음을 생각하고 도울 수 있었던 건 어린 시절에 겪었던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해요. 살면서 트라우마 사건에 대처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트라우마가 오는 순간 즉각적으로 해야 할 조치는 생존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준비된 각본이 아무것도 없어요. 다만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자기만의 시간대에서 과거에 경험한 트라우마를 반드시 마주해야만 에너지의 방향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거예요. 저자는 어린 시절에 트라우마를 경험해봤고, 몇십 년간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살피면서 내면이 단단해질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네요. 트라우마, 몰입, 자아, 실패, 믿음, 위협, 중독, 가치, 상실 그리고 삶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나약함과 용기,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 우리의 뇌는 매일 성장하며 새롭게 태어나고, 노력만 한다면 마음도 성장하며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고 해요. 내적인 삶의 진화는 일관되고 꾸준한 과정이 아니라 흔들리며 균형을 유지해가는 과정이라는 저자의 깨달음이 제겐 감동으로 전해졌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