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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로 철학하기 - 에드거 앨런 포에서 정유정까지
백휴 지음 / 나비클럽 / 2024년 1월
평점 :
《추리소설로 철학하기》는 추리소설가이자 추리문학 평론가인 백휴 님의 책이에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추리소설을 통해 철학적 사유로 이끌고 있어요. 그 시작은 '추리소설 = 오락소설'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철학함'의 시각으로 이해하는 거예요. 어쩌다가 추리소설에 가벼운 오락거리로 치부된 건지 모르겠지만 요즘 세대의 인식은 좀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깊이 있게 탐색하며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에요. 애드거 앨런 포와 보르헤스, 애거서 크리스티나와 니체, 레이드먼드 챈들러와 사르트르, 줄리아 크리스테바, 움베르트 에코, 폴 오스터, 히가시노 게이고와 마루야마 마사오, 류성희와 한나 아렌트, 서미애와 칸트, 황세연과 슬라보예 지젝, 정유정과 조르조 아감벤, 최인훈과 체스터튼의 브라운 신부 등 추리소설가와 철학가의 조합이 흥미롭고 재미있어요. 딱 잘라서 처음이라고 말할 순 없지만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사회적인 문제를 인식하게 된 작품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에요. 단순히 사건의 범인을 쫓는 게 아니라 사건이 벌어진 상황과 인물 간의 관계, 인물의 특성이 갖는 의미를 파고들게 됐던 것 같아요. 저자는 본격이 모더니즘을 대변한다면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이론 투쟁이 추리소설 내에서 사회파와 본격파로 편을 갈라 싸움을 못할 것도 없다고 이야기했는데, 굳이 싸움을 붙이지 않아도 독자들의 내면에서는 이미 사상적 대립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지 않나 싶어요. 정유정 작가님은 우리에게 악인이란 무엇인지, 상당한 논쟁거리를 던져주고 있어요. 악 혹은 악인은 나쁜 것이니 교화하거나 처벌하거나 피해야 한다는 생각을 넘어 한 걸음 더 진전시킨 이야기를 통해 생존의 방식을 고민하게 만드네요. 정유정 작가는 범죄 스릴러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추리소설과 자신의 소설 사이에 분명한 경계선을 긋고 있는데, "나는 소설의 종류를 크게 둘로 나눈다. 하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 다른 하나는 경험을 하게 하는 소설." (314p) 이라고 하면서 추리소설은 전자에 속하고 독자의 정서에 호소하는 자기 소설은 후자에 속한다고 이야기했어요. 사실 제 개인적으로는 소설의 종류를 나누는 게 몹시 불편하다고 느꼈는데 그건 저한테는 장르 구분이 무의미하기 때문이에요. 똑같은 책도 독자에 따라 전혀 다른 책이 될 수 있으니까, 책에 담긴 내용과 의미는 전적으로 독자의 몫으로 남겨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추리소설로 철학하기는 문학작품의 즐거움을 몇 배로 늘려주는 색다른 사색의 시간을 줬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