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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에서는 호수가 자라고 ㅣ 시인수첩 시인선 80
이어진 지음 / 여우난골 / 2023년 11월
평점 :
《사과에서는 호수가 자라고》는 이어진 시집이자 시인수첩 시인선 여든 번째 책이에요.
이어진 시인은 1995년 등단 이후 8년 만에 첫 시집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를 출간했고, 연이어 두 번째 시집 《사과에서는 호수가 자라고》를 냈어요. 시를 쓰고 시집을 펴내면서 어떤 마음이었을지, 그 궁금증을 '시인의 말'로 들려주고 있어요.
"밤이 깊을 때까지 물속을 걸어다녔다 물이랑은 내 마음의 갈피를 어루만지며 차게 울었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내 울음소리였다 나는 바닷물을 두 손으로 움켜잡았다 내 손가락이 물속에서 조금씩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5p)
어두컴컴한 바다를 걸어본 적이 있다면 파도치는 소리를 들어봤을 거예요. 슬프고 외로웠다면 그 소리가 울음소리처럼 들렸을 거예요. 내가 우는 것인지 파도가 치는 소리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그곳에서 바닷물을 두 손으로 움켜잡으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겠지요. 근데 시인은 손에서 바닷물이 사라진 게 아니라 내 손가락이 조금씩 사라진다고 표현했네요. 나 자신이 바다가 되어버리고 마는...
시를 읽다보면 아하, 이런 마음이구나 저절로 알게 될 때가 있어요. 맞는지 틀리는지 따질 필요없이 그냥 온전히 느낄 수 있어서 좋아요. 그래서 시는 마음을 키워주는 좋은 씨앗인 것 같아요. <내재율>이라는 시에서 "아름다운 문장을 보면 눈 안에 솜털이 돋아요 봄과 여름 사이의 흘러가는 시간 위에 앉은 그네에 대하여 꽃들은 씨앗을 터트리지만요 나는 한장의 꽃잎도 갖지 못한 얼굴이랍니다 가끔 흘러가는 구름의 손을 끌어와 이불로 덮고 잠이 들기도 해요 어쩔 땐 그 속에서 무당벌레로 태어나기도 하죠 (···) 구름의 날개를 바라보면 온몸에 깃털이 돋아요 진실한 마음으로 손을 건네면 그 마음이 느껴질까요 나에 관해 말하자면 두둥실 흘러가는 내재율이에요" (74-75p)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인 운율이 무엇인지 꽃과 구름, 무당벌레가 되어 기분 좋은 꿈처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어요. 요즘은 도통 좋은 꿈을 꾸지 못했는데, 시를 읽으면서 마음 한켠이 몽글몽글 간지러웠어요. 나른한 오후의 햇빛처럼 평온한 미소를 짓고 싶을 때, 이 시집을 읽으면 될 것 같아요. 물론 누군가에게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겠지만 제게는 《사과에서는 호수가 자라고》 라는 시집 속 시들이 분홍빛 마음으로 느껴졌어요. 시를 써본 적은 없지만 "시를 쓰는 날엔 슬프고 기쁜 여행 같은 느낌의 날씨들이 나무들처럼 서 있고 했습니다." (137p)라는 말하는 시인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았어요. 삭막하고 팍팍한 세상을 버텨내려면 우리에겐 시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나이들수록 시를 읽게 되는가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