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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속의 여인 ㅣ 아르테 오리지널 28
로라 립먼 지음, 박유진 옮김, 안수정 북디자이너 / arte(아르테) / 2024년 1월
평점 :
"그날 이후 고작 1년 뒤에 당신이 그 사람을 떠났단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요. 그렇지만 죽음이란 게 원래 사람을 변하게 만들긴 하죠.
나도 죽어서 다른 사람이 되었는데 이 세상 누구도 이 사실을 알 턱이 없네요.
살아 있을 적에 나는 클레오 셔우드였어요. 죽어서는 호수 속의 여인, 추운 겨울 내내
분수대에 잠겨 있다가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계절인 봄에서 여름으로 접어들 무렵에
물에서 꺼내진 흉물이 되었죠. 살점이 대부분 사라져 얼굴에는 남아 있는 게 없었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도 관심 없었는데 느닷없이 당신이 나타나
나한테 그런 우스꽝스러운 별명을 붙여놓고,
가서는 안 될 곳을 찾아가 들쑤시며 사람들을 못살게 굴었어요.
가족 말고는 신경 써서는 안 되는 일이었는데.
나는 악질인 남자와 데이트를 하러 나갔다가 두 번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된
철없는 여자에 불과했어요.
그런데 내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에 별안간 당신이 나타나더니,
어느새 자기 이야기로 만들기 시작했네요.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나요, 매들린 슈워츠?
그냥 그 멋들어진 집에서 결혼 생활에 안주하며
나를 분수대 밑바닥에 가만히 내버려둘 수는 없었나요?
난 그곳에 있어야 안전했단 말이에요.
내가 거기 있어야 모두 안전할 수 있었다고요." (15p)
소설 초반부를 읽다가 살짝 놀랐어요.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인데, "당신을 한 번 본 적이 있어요." (9p)라면서 시작되는 첫 문장의 주인공이 호수에서 발견된 시신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거든요. 만약 매들린 슈워츠가 아니었다면 클레오는 영영 잊혀지고 말았을 거예요. 도대체 왜 클레오는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냐고 말한 걸까요. 무엇으로부터 안전하기를 원했던 걸까요. 그 모든 해답은 매들린, 매디 슈워츠를 통해 찾아야 해요.
1960년대 미국 볼티모어를 배경으로 한 여성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 그것이 바로 《호수 속의 여인》이에요.
저자 로리 립먼은 1997년 작가로 데뷔한 이래 앤서니상, 셰이머스상, 매커비티상, 베리상, 에드거상, 애거서상, 네로 울프상 등 세계 유수의 문학상을 석권했고, 오늘날 가장 재능있고 다재다능한 범죄 소설가 중 한 명으로 인정받고 있는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하네요. '볼티모어 선'의 기자였던 아버지와 도서관 사서였던 어머니를 둔 그녀는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고, 기자생활을 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고 해요. 볼티모어를 무대로 전직 기자 출신 테스 모리한이 아마추어 탐정으로 활약하는 <볼티모어 블루스>가 데뷔작이래요. 아무래도 볼티모어라는 지역적 배경과 기자라는 직업이 작가의 작품 세계에 주요한 키워드가 된 게 아닌가 싶네요. 《호수 속의 여인》은 작가의 유년 시절에 실재했던 미제 사건인 11세 아동 납치 살해 사건과 33세 여성 셜리 파커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집필한 작품이래요. 이 소설에서도 주인공 매디 슈워츠는 기자예요. 우연히 볼티모어 경찰이 실종된 11살 소녀를 찾는 일을 돕다가 볼티모어 신문사 <더 스타>에 취직하게 되고, 호수에서 젊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기사를 쓰기 위해 취재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요. 앞서 언급했듯이 이 소설은 매디 슈워츠를 지켜보고 있는 클레오의 독백이 인상적인데, 점점 사건의 진실을 파고들수록 사건 그 자체보다 사건을 추적해가는 메디 슈워츠라는 인물을 주목하게 되네요.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던 매디가 갑자기 20여년의 결혼 생활을 끝내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여성 기자로서 성공하기 위해 애쓰는 과정들이 당시의 시대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어요. 여자로 산다는 건 어떤 것인지, 시대는 바뀌었으나 여전히 변하지 않는 건 무엇인지, 많은 생각거리를 남겨주네요. "당신을 한 번 본 적이 있어요."라는 말을 다시금 곱씹게 되는 작품이에요. 아참, 나탈리 포트만 주연으로 애플 TV 오리지널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래요. 원작을 아는 만큼 무척 기대가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