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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맛 - 인문학이 살아있는 도시여행 큐레이션
정희섭 지음 / 에이엠스토리(amStory) / 2024년 1월
평점 :
여행을 떠나는 일은 쉽고도 어려운 것 같아요.
무작정 바람을 쐬러 나설 수도 있지만 한참 계획을 세워놓고도 못 가는 경우가 생기니 말이에요.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한 아쉬움을 여행 크리에이터의 영상이나 여행 관련 서적으로 달래다 보니, 새로운 여행지에 눈을 뜨게 되더라고요. 한 가지 변함 없는 사실은, 아는 만큼 보고 느낀다는 거예요.
《도시의 맛》은 열두 개의 주제로 엮어낸 매혹적인 도시 이야기를 담은 책이에요.
저자는 지금까지 59개국 370여 개의 도시를 다양한 방식으로 여행해온 도시인문학자라고 하네요.
우선 도시인문학이 무엇인지 궁금했어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도시'와 '인문학'이 결합된 학문인데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도시를 사람들의 삶의 공동체로 규정하고 사물의 공간으로 인식됐던 도시 공간을 의미의 공간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하네요. 도시를 인간 삶이 펼쳐지는 무대로 인식하고 인문학적 의미를 지닌 공간, 즉 문학적 역사적 철학적으로 성찰하는 학문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이 책이 기존의 여행서적과는 결이 다른 것 같아요. 단순히 여러 도시를 여행했던 기록이 아니라 인문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도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관람객을 위해 기획하고 관리하는 큐레이터가 있듯이, 저자는 도시여행을 위한 큐레이터를 자처하고 있어요. 도시인문학자가 꼽은 열두 가지 주제는 사유의 공간, 역사의 증언, 영웅의 탄생, 위대한 자연, 인간의 걸작, 스토리텔링의 맛, 낭만의 즐거움, 다양성의 힘, 도시의 분위기, 자유와 평화, 치유와 희망, 감사와 행복이며, 각 주제에 알맞은 도시들을 소개하고 있어요. 단 한 장의 사진과 짧은 설명이 전부라는 점에서 여행자에겐 너무나 부족한 내용이지만 '도시여행'이라는 전시회를 관람한다고 여기면 더할 나위 없는 것 같아요. 세상의 아홉 가지 복을 가진 예루살렘, 타개하지 못하고 타계한 열사의 한을 품은 헤이그, 천재의 건축이 태양을 삼키는 도시 바르셀로나, 베트남을 지키는 용의 전설 하롱베이, 인간의 집념과 신성의 교차점 시기리야, 이상을 추구한 사나이와의 시간여행 톨레도, 동유럽 최고의 존재감 프라하, 오르는 자는 복이 있나니 짜익티요... 이 책의 마지막 도시는 베들레헴이에요. 그리스도가 태어나신 그곳에서 성탄전야를 보냈던 저자는 초라하지만 가장 거룩한 성탄절을 보낸 도시였다고 이야기하네요.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화려한 장식이나 들뜬 축제 분위기는 없지만 광장의 한쪽 무대에 세계 각국에서 온 성가대들이 성가와 캐럴을 부르면서 도시 전체에 은은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해요. 그때는 그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었는데 시간이 흘러 이제는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어쩐지 슬프네요. 사랑과 믿음으로 가득차야 할 세상이 의심과 분노, 증오와 다툼으로 얼룩지고 있으니 말이에요. 결국 도시여행은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사람의 관점에서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네요. 아무래도 도시의 맛은, 세월이 더 흘러야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여행은 도시와 시간의 연결이다.
내게 가장 아름답고 철학적인 여행은 그런 멈춤들 사이에 있다."
- 폴 발레리 Paul Vale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