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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꼬리의 전설
배상민 지음 / 북다 / 2023년 12월
평점 :
"고려 말은 소문의 시대였다.
밖으로는 왜구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고, 안으로는 이인임, 임견미 같은 권신들이 득세하여
활개를 치는 통에 조정이 어지러웠다. 나라 꼴이 이러하니 무수한 소문이 떠돌 수밖에 없었는데,
원귀와 괴물에 관한 것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자는 원귀에 대한 소문을 낳았고, 영문도 모르고 죽임을 당한 자는 괴물에 대한 소문을 낳았다. 그렇게 한번 태어난 소문은 용케 살아남아 서로 이어지고, 스스로 살을 붙여 마침내 온전한 이야기로 그 꼴을 갖추곤 했다." (9p)
참으로 신기했어요. 꼬리가 아홉 개 달렸다는 여우 구미호에 관한 이야기라서 흥미를 느꼈는데, 이 소설은 바로 그러한 '소문'을 주제로 다루고 있으니 말이에요. 요즘은 입에서 입으로 떠도는 소문이 아니라 SNS와 유튜브를 통해 많은 양의 뉴스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는데,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을 속일 의도로 마치 사실인 것마냥 꾸며진 수많은 가짜 뉴스가 무분별하게 생산되고 유통된다는 점이에요. 사람들을 불편하고 불안하게 하며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가짜 뉴스는 오늘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인간이 무리 지어 사는 곳 어디에서나 존재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가고, 천 년을 간다는 것을 이 소설이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아홉 꼬리의 전설》은 배상민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님이야말로 대단한 이야기꾼이구나 싶더군요. 주인공 '나'는 벼슬에는 관심 없는 한량인데 기이한 소문과 이야기를 좋아하여 그 이야기들을 쫓다보니 어느새 탐정 역할을 하게 된 정덕문이라는 인물이에요. 새로 부임한 감무인 금행과의 첫 만남은 썩 유쾌하지 않았지만 투닥거리다가 친해져 친구가 되면서 멋진 팀플레이를 펼쳐주네요. 셜록 홈즈와 같은 천재 탐정은 아니지만 홈즈와 왓슨 못지 않은 우정이랄까요, 사건 해결도 중요하지만 두 사람의 끈끈한 우정이 돋보였던 것 같아요. 신분과 계급을 따지지 않고 마음을 나누는 사이, 이게 진짜 관계인 거죠.
끔찍하게 살해된 처녀들의 시신에 간이 없는 것으로 보아 구미호의 짓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조정에서는 감무관을 파견하는데, 그 감무가 처녀귀신 때문에 죽어 나가니, 고려 천지에 이런 마을은 또 없을 거예요. 근데 주인공은 그 소문들이 살을 붙여 이야기가 되어가는 것에 매혹되어 자진해서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세상에 이런 괴짜는 또 없을 거예요. 덕문과 금행은 연쇄적으로 일어난 살인 사건과 흉흉한 소문의 실체를 함께 찾아 나서면서 위험에 처하게 되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마치 아홉 꼬리를 가진 여우 구미호에게 홀린 것마냥 점점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네요. 매혹적인 이야기에 숨겨진 놀라운 진실과 거짓, 재미뿐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환기시켜주는 톡 쏘는 사이다 같은 작품이네요.
"무서워서, 더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소.
어디까지 더 나빠질 것인지 알고 싶었달까.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말이오. 사는 게 무서워서 빠져들 데가 필요했던 것 같소.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집안일을 잊을 수 있었으니. 그 버릇이 지금까지 남아서
이렇게 이야기를 쫓아다니는 것인지도 모르겠소.
어쨌거나 지금은 지금대로 이야기를 쫓아다니면 내 처치를 모른 척할 수 있거든."
(43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