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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
전유성 지음 / 허클베리북스 / 2023년 12월
평점 :
전유성이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아하!"라고 반응하며 반기는 사람이라면 꽤 연식이 있다는 거겠죠.
개그맨의 개그맨, 개그 멘토로 불리는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심야 볼링장과 심야 극장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고 현실화시켰고, 기상천외한 개그 공연을 기획했던 장본인이에요. 과거 예능프로그램 중에 '전유성을 웃겨라' 코너가 있었는데 당시에는 굉장히 파격적인 재미를 줬던 기억이 나네요. 암튼 오랜만에 전유성님의 책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 크네요. 진짜 개그맨, 세상을 늘 새롭게 바라보고 호기심을 갖는다는 건 특별한 재능인 것 같아요.
《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은 개그맨 전유성의 인생 에세이집이에요.
기존 에세이와는 완전 분위기가 다르다는 점, 일단 재미있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웃을 수 있고, 때론 진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이야기네요.
"생각해보면 호기심은 나를 살게 해왔던 힘이다. 남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물음표를 붙이는 일이 즐겁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어슬렁거린다. 마치 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 (11p)라는 저자의 말처럼 어슬렁거리며 실없이 웃어넘길 수 있는 그의 이야기가 좋네요.
우리의 눈에는 개그맨의 관점이 놀라운데, 정작 저자는 시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점이 일반 사람들과 굉장히 달라서 재미있다고 하네요. 부산 사는 시인이랑 지리산 뱀사골에서 출발해 천왕봉에 오르기로 하고, 뱀사골 산장에 하루를 묵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눈이 많이 와 있었고 산장 주변으로 쓰레기 포대들이 다 헤쳐져 있었대요. 먹을 게 없으니까 멧돼지들이 뒤져 놓은 거라고, 저자는 사람들이랑 몇 마리라 내려왔나, 그거 잡을 수 있나 이런 이야기를 했대요. 더군다나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산행을 포기하게 됐는데 우연히 시인이 적어 놓은 메모지를 보게 됐대요. 거기엔 "누가 산돼지 밥상에 하얀 밥상보를 덮었나." (45p) 라고 쓰여 있더래요. 똑같은 장면을 봤고, 자신도 아는 단어들인데 어째 시인에게선 저런 문장이 나왔을까요. 오래 전 서정주 시인은 무슨 영문인지는 몰라도 나이 칠십에 귀를 뚫고는 첫 마디가 "아, 내 귓구멍으로 하늘이 왔다 갔다 하는구나." (45p) 였대요. 시인들을 통해 세상 보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는 저자를 보면서 저 역시 배웠네요. 우리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보면 거리감 혹은 불편감을 먼저 느끼기 마련인데, 살짝 생각을 바꾸면 그 '다름'이 매력일 수 있겠더라고요. 저마다 다르다는 이유로 싸우는 세상, 이제는 달라서 멋지다고 서로 칭찬하며 다른 점을 배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구가 훨씬 살기 좋아질 텐데, 무엇보다 더 재미있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