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웃고, 배우고, 사랑하고 - 네 자매의 스페인 여행
강인숙 지음 / 열림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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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웃고, 배우고, 사랑하고》는 강인숙님의 여행 에세이예요.

저자는 삶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이미 출판된 책들을 한데 모아 전집을 내고 싶었고, 이 책은 그동안 썼던 여행기 중 『네 자매의 스페인 여행』 (2002년)과 에세이 「로스앤젤레스에 두고 온 고향」 (1978년), 그리고 1977년에 본 비철의 파리와 1999년에 본 제철의 파리 이야기를 담았다고 하네요.

보통 여행 에세이를 읽는 건 특정 여행지에 대한 관심 때문인데, 이번 책은 좀 달랐던 것 같아요. 여행지보다 사람이 더 보였거든요.


"우리는 두 살이나 세 살 터울로 연이어 태어난 다섯 자매여서

자랄 때 친구가 필요 없었다. 형제는 하늘이 내려준 고마운 친구라고 할 수 있는데,

숫자가 다섯이나 되니 아쉬울 것이 없었다. 우리는 빈 성터에 있는 외딴집에서 우리끼리만 놀면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만약 그때 저들이 없었더라면 내 유년의 시간들이 얼마나 삭막하고 지루했을까?" (21-22p)


정년 퇴임을 한 저자는 원래 남편과 함께 스페인 여행을 갈 계획이었는데, 남편의 일정이 바뀌면서 부득이하게 취소될 뻔 했던 걸 작은언니가 같이 가자고 제안하면서 막내만 빼고 네 자매가 뭉치는 여행이 됐어요. 20년간 뿔뿔히 흩어지내던 여자 형제들이 다같이 모인 적은 있어도 같이 해외여행을 한 적은 없었다는데 우연히 틀어진 계획이 뜻밖의 여행을 떠나는 기회가 된 거예요. 큰 언니는 일흔둘, 제일 아래인 동생이 예순넷으로,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이지만 큰 언니 앞에서 동생들은 그저 '쪼그만 계집애'가 되는 마법 같은 시간들이 펼쳐지네요. 성격이며 취향이며 저마다 개성 넘치는 자매들이라 투닥거릴 만도 한데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엔도르핀이 마구 샘솟는다니, 이것이 행복이구나 싶네요.


"우리 형제는 그 애가 쉬고 싶다고 하면 아무 데나 놓아두고 우리끼리 관광을 하는 버릇이 있다.

그게 그 애가 원하는 것이다. ··· 

동생의 관광 표어는 '나 여기 왔다네'이다. 

병치레를 많이 한 동생은 녹내장과 근육무력증, 암을 이겨내며 살아서,

가고 싶었던 땅을 디디는 것에 기쁨을 느꼈고, 자기를 거기까지 데리고 온 언니들을 고마워한다.

때로는 때리는 것이 사랑일 수 있듯이 때로는 버리는 것이 사랑일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가 부담 없이 함께 여행을 즐긴다. 

하지만 밤에 혼자 두고 다녀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오늘 새삼스럽게 가슴이 아픈 것은 

동생이 아무것도 즐길 수 없는 어둠 속에 혼자 버려져 있었다는 데 있다." (98-99p)


건강하고 젊은 사람들도 해외여행은 체력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에요. 여기저기 아프고 힘들어도 함께 웃으며 여행하는 네 자매를 보니, 인생을 여행에 비유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여행을 누구와 함께 하느냐, 그것이 여행을 고생이 아닌 즐거움으로 만드네요. 바르셀로나 거리에서 건널목을 건너다가 잘못해서 형제들 셋이 겹겹이 넘어지는 사고가 벌어졌는데 늘 떨어져 다니는 버릇 때문에 백치기는 당했어도 혼자만 무사했던 저자가 웃기 시작했고 그 웃음이 전염되어 거리가 한바탕 시끄러웠다고 하네요. 어렸을 때 너무 웃어서 밤마다 야단 맞던 풍경이 떠오르는 장면이라 모두가 소녀 시절로 돌아갔던 거죠. 세월의 무게를 잊게 만드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여행 이야기라서 참으로 따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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