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헬레나에서 온 남자
오세영 지음 / 델피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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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

영화 속 대사가 깊은 여운을 남기는 건 우리 역사의 한 장면이기 때문일 거예요. 비뚤어진 역사를 돌이킬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되짚어봐야 하는 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과거를 교훈 삼아 보다 현명한 판단과 행동을 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어요.

오세영 작가님은 조선사에서 제일 큰 민란인 홍경래의 난과 세계사에서 큰 획을 그은 프랑스대혁명은 비슷한 시기에 각각 동아시아와 유럽에서 발생했고, 둘 다 독재 왕정과 신분 차별에 따른 억압에 반발해서 민중이 봉기한 사건인데 홍경래의 난은 불과 수개월만에 진압된 데 비해서 프랑스대혁명은 세계사의 큰 영향을 끼친 민주와 인권의 상징이 되었을까, 왜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결과가 되었는지, 그 의문에서 역사소설을 집필하게 됐다고 하네요. 역사적 기록에는 실패로 끝난 홍경래의 민란이지만 저자는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그때의 민심과 다르지 않기 때문일 거예요.

《세인트 헬레나에서 온 남자》는 오세영 작가님의 역사소설이에요.

이 소설의 매력은 역사적 사건과 실존 인물 속에 등장하는 안지경이라는 가상 인물의 활약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젊은 청년 안지경이 홍경래의 마지막 순간을 지키는 장면이 인상적이에요.

"혁명이라. 아쉽지만 내 혁명은 실패로 돌아갔네.

제대로 된 혁명이라면 팔도 백성의 마음을 움직였을 것이고, 도처에서 들고 일어섰겠지.

하지만 우리는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네. 무엇을 위해 혁명을 하는지,

새 세상은 어떻게 다를지를 백성들에게 심어주지 못했네.

이제 기쁜 마음으로 동지들, 나를 따르던 백성들을 만나러 가겠네.

자네는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게.

살아남아서 무엇이 부족했는지를 살피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깨달아서 미완의 혁명을 완수하게." (118p)

백령도 어부 김 씨에게 구조된 안지경은 어부로 지내던 중 관군에게 발각되어 쫓기다가 영국 배 알세스트 호에 구조되면서 세인트 헬레나 섬에 이르게 되는데, 이 놀라운 여정을 탄생시킨 상상력에 감탄했어요. 머나먼 과거 역사 속에서 결정적인 두 사건을 하나로 이어주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 덕분에 답답하고 괴로웠던 심정을 일부 해소할 수 있었네요. 분명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지만 그 인물이 보여준 혁명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저자는 안지경의 목소리로, "··· 나는, 그리고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은 절대로 조선의 혁명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뿌리 깊은 나무라고 했나? 그렇다면 혁명의 의지는 마르지 않는 샘이다. 뜻을 이룰 때까지 혁명의 불꽃은 계속 타오를 것이고 언젠가는 백성의 나라를 열 것이다." (333p)라고 외치고 있어요. 그래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아직 미완이지만 질곡을 딛고 일어서 나아가리란 걸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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