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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의 심리학 - 화가들의 숨겨진 페르소나를 심리학으로 읽어 내다
윤현희 지음 / 문학사상 / 2023년 10월
평점 :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깨닫는 순간이 있어요.
지식을 통해 아는 것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와닿는 것.
그림이 그랬어요. 유명한 작품이라서가 아니라 그림 그 자체의 힘이 강렬해서 마음 깊이 영향을 받았던 것 같아요.
《자화상의 심리학》은 심리학자 윤현희님의 책이에요.
저자는 열여섯 명 화가들의 삶과 예술을 소개하면서 그들의 상처와 고통이 어떤 방식으로 자화상에 스며들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이 책에서는 자화상에 반영된 자아의 유형을 위풍당당한 자아, 성스러운 긍정의 자아, 고통받는 내면의 자아로 나누어 각각 그런 자아의 페르소나를 그려냈던 화가들을 작품과 함께 소개하고 있어요. 가장 인상적인 자아는 역경과 고난을 딛고 일선 긍정의 자아이며 여기에 속하는 여성 화가들은 우리 시대에 필요한 담대함과 용기의 아이콘이라고 볼 수 있어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천부적인 재능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온갖 시련을 겪었으나 굴하지 않았고, "내가 곧 회화다"라고 선언했듯이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였고, 「회화의 알레고리로서의 자화상」 은 예술적 지향과 고전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이 만나 탄생한 기념비적인 자화상이며 젠틸레스키의 용기와 통찰력, 실천력을 포함한 천재성을 증명하는 작품이기에 긍정심리학자들이 제기한 '외상 후 성장 posttraumatic growth, PTG' 이라는 단어의 표본이네요. 자화상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난 화가는 프리다 칼로였어요. 저자는 삶의 고통 앞에서 뭉크는 상처받은 표정으로 비명을 지른다면 칼로는 고통의 배경을 뒤로하고 의연한 표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열어 보인다고 표현했어요. 막달레나 카르멘 프리다 칼로 이 칼데론이라는 긴 이름은 외우기 어려워서 우리는 프리다 칼로라고 부르는 그녀는 평생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시달렸으나 최후의 순간까지 열정적이었어요. 1954년 마흔일곱 살로 생을 마감한 그녀의 유작인 수박 정물화에는 "viva la vida ! 인생이여 만세 !" 라는 글귀가 적혀 있어요. 칼로의 자화상은 사적인 동시에 사회 정치적이며 문화적 양면성과 다면적 정체성을 함축하고 있다는 해설을 통해 그 의미를 되새겼다면 수박 정물화는 초록 껍질 안에 빨갛게 드러난 속살, 그 위에 새겨진 글귀와 서명으로 모든 걸 이해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20세기 설치미술의 작은 거인 루이스 부르주아는 아내로, 세 아들을 돌보는 어머니로, 이민자로, 이름 없는 예술가로 젊은 시절을 보내다가 20세기를 마감할 무렵에야 전성기를 맞이했다고 해요. 80세가 됐을 때 유명 미술관 앞뜰에 거대한 거미 형상의 조형물 「마망」을 설치하는 대형 프로젝트에 착수했고 미국의 뉴욕현대미술관, 스페인의 구겐하임빌바오미술관, 캐나다의 오타와국립미술관, 영국의 테이트모던미술관, 그리고 한국의 호암미술관이 「마망」을 소장하고 있어요. 거대하고 그로테스크한 거미 형상이 하늘을 향해 솟구쳐 있고, 물 위에 그 모습이 비치는 작품 사진을 보니 소름이 돋았어요. 그녀의 아이콘인 청동 거미는 부르주아 자신의 자화상이자 시간과 기억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삶의 이야기를 직조해내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거대한 조형물이 주는 느낌은 이전에 봤던 자화상과는 사뭇 다르지만 루이스 부르주아의 삶을 통해 하나의 이야기로 보였어요. 화가들의 자화상이 우리에게 건네는 이야기는 결국 우리 역시 불확실한 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나, 당당한 자아를 찾는 단서가 되었네요. 이제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야 할 차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