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거리의 암자
신달자 지음 / 문학사상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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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거리의 암자》는 신달자 시선집이에요.

이 책은 묵상집 《미치고 흐느끼고 견디고》와 함께 출간되었어요. 팔순을 맞은 저자는 시인으로서 발표한 천 편이 넘는 시들 가운데 182편을 엄선하였는데 그 심정을, "60여 년 한 인간의 철근 같은 감정을 누가 밀고 왔을까. 기쁨, 슬픔, 분노, 절망 그리고 폭력적인 감정들을 무엇으로 달래며 여기까지 왔을까. 억눌림을 절제라는 이름으로 달래며 죽음의 발목을 잡을 때 터지는 비명의 언어를 달래며 꾸역꾸역, 아니 가파르게 여기까지 왔다. 그 16권의 시집에서 피가 당기는 대로 여기 모셨다. 사람과 자연의 감동이 뜨겁고 아직도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5p)라고 고백했어요.

우리에게 시란 무엇일까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는 어렵다'라는 고정관념이 있었어요. 우리말로 적혀 있지만 나만 모르는 언어처럼 시에 담긴 의미들을 다 헤아리지 못한다고 느꼈거든요. 뭔가 더 깊은 뜻이 숨겨져 있는데 거기까지 닿을 수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어렵다고 단정지었던 것 같아요. 근데 시 속에 알아내야 할 비밀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내 마음 탓이라는 걸 어느 순간 깨닫게 됐어요.

앞서 신달자 시인의 묵상집을 읽으면서 한 편의 시와 같다고 느꼈는데 시선집에서는 이야기가 보였어요. <겨울 그 밤마다>라는 시에서 "물이 끓고 있다 / 어느 젊음이 조금씩 줄어들며 / 끓고 있었다." (22p)로 시작되고 있어요. 우리의 삶이 주전자에 담긴 물처럼 지글지글 끓어오르며 조금씩 줄어든다는 표현이 너무나 와닿았어요. 겨울밤 시인은 끓는 물소리를 들으며 세월을 느꼈네요. 달아오른 빈 주전자에 찬물을 따르며, 오늘을 생각했겠지요. 생애 마지막을 모르는 우리는 그저 졸아든 빈 주전자를 매일 채워가며 살아갈 뿐이니까요. <불행>이라는 시의 전문은, "내던지지 마라 / 박살난다 / 잘 주무르면 / 그것도 옥이 되리니." (160p)인데 고행과도 같은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요. 불행 중 다행, 숨겨진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 인생인 것 같아요. <예술혼>이라는 시의 마지막 연은, "종이의 심장에 사람의 심장이 / 닿는 순간 / 어지러운 인간의 허물도 / 사람의 정신으로 벌떡 일어서게 한다." (246p)인데, 시를 읽는 독자의 마음도 똑같다고 생각했어요. 시인의 예술혼이 종이 위 활자를 통해 내 심장에 닿았구나,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이었어요. 번쩍, 벌떡, 쿵쾅...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들이 시의 언어가 되어 또렷하게 보이고 크게 들렸으니까요. <저 거리의 암자>라는 시는 무산스님과의 각별한 인연이 숨겨져 있어요. 시인은 2000년 남편을 떠나보낸 뒤 인생 자체에 좌절하고 문학마저도 내팽개칠 정도로 고통에 빠져 있었는데 그때 스님이 부르셨고, 남암南庵이라는 법명을 지어주셨대요. 그리고 백 명도 넘는 스님들이 있는 자리에서 "너희들 3개월 수행보다 이 시 한 편이 낫다"고 하셔서 놀란 마음에 며칠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다시 문학 앞에 자세를 고쳐 앉게 되었대요. "거리의 암자를 가슴으로 옮기는데 / 속을 쓸어내리는 하룻밤이 걸렸습니다 / 금강경 한 페이지가 겨우 넘어갑니다." (199p)라는 마지막 연을 읽으면서 가만히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마구 흔들리고 목놓아 울부짖더라도 살아있으니 살아내자고, 웅크린 나를 꼬옥 안아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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