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
김홍신 지음 / 해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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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는 분단의 비극이 뭔지를 잘 몰랐어요.

똘이장군이라는 만화를 보며 자란 세대들은 붉은돼지를 때려잡듯이 멸공, 반공 교육을 받아서 북한 사람들은 시뻘건 괴물이고 적이라고 배웠거든요. 그래서 빨갱이는 아주 나쁜 거라는 인식이 심어졌던 것 같아요. 근데 텔레비전에서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가 방송되면서 해방 이후 헤어진 가족을 찾는 이산가족들의 아픔을 보게 된 거예요. 전쟁으로 뿔뿔이 흩어져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이산가족의 애타는 마음이 뭔지 몰라도 눈물이 났던 것 같아요. 슬프고 아픈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북한에도 우리와 같은 민족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우리가 미워해야 할 건 전쟁이지 사람이 아닌데, 여전히 이념 갈등을 부추기며 사회 분열을 조장하는 무리들 때문에 우리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어요.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는 김홍신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이 소설은 딸 자인의 시점에서 아버지이자 한 남자의 살아온 시간을 그려내고 있어요. 자인의 외삼촌 재필은 아버지의 절친이었고, 아버지를 가리켜 "이대로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라고, "그놈은 말이다, 너무도 인간적인, 개도 안 물어갈 인간적인 놈이었어. 그 시절에는 말이다, 인간적인 놈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았고 희망이 없었어. 아무나 걷어차도 되는 주인 없는 짐승이랄까, 실험실에 갇힌 동물 같은 거였으니까. 젠장." (33p)이라고 말했어요. 지수는 결혼해서 딸 아이의 엄마가 될 때까지 친부를 모른 채 살다가 피골이 상접한 처참한 모습으로 죽은 아버지를 마주하게 됐고, 아버지가 남긴 원고를 읽게 됐어요. 외삼촌은 아버지가 자신이 죽은 뒤에 책을 내달라고 신신당부해서 그동안 감춰둔 거라고 했어요. 무엇보다도 원고를 가감없이 그대로 출간해야 한다고, 그래야 너나 나나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자인은 원고를 읽으면서 원고의 주인공이 증오하는 악마를 잔인하고 처절하게 응징하는 통쾌한 복수극으로 고쳐 쓰고 싶었는데, 외삼촌은 "그러면 서진이는 세 번 죽는다. 두 번 죽은 것도 억울한데 네가 또 죽이려고 하냐?" (47p)라고 했어요.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의 해피엔딩을 원하듯이, 자인도 똑같은 마음이었을 거예요. 진정한 복수란 무엇일까요. "가장 아름다운 복수는 용서지요." (324p) 솔직히 머리로는 알 것 같지만 가슴으로는 온전히 이해한다고 말하지 못하겠어요. 인간적인 고뇌와 절망의 모습을 보면서 아프고 슬펐어요. 한서진의 복수, 그의 선택에 대해 달리 할 말은 없어요. 이건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운명에 따르는 일인 것 같아요. 한 남자의 죽음 뒤에 다시 그의 삶을 되짚어가는 과정이 참으로 놀라운 인간 수업이었네요. 인간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위하여 사는지...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는 시대적 비극인 동시에 가슴 벅찬 사랑이네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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