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의 날씨
볼프 하스 지음, 안성철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퍼즐을 좋아하세요? 글쎄요. 너무 심심한데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면 해볼 수는 있겠죠.

솔직히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한 번에 볼 수 있는 그림을 굳이 왜 조각으로 나눠서 끼워 맞추기를 하는지, 아직 재미를 느낄 만큼 해 본 적이 없어요. 흥미를 못 느끼니까 시도한 적은 없지만 기회가 되면 심심풀이 정도로는 해보겠다는 정도예요.

그런데 자기도 자신을 모를 때가 있어요. 분명히 난 별로야. 하고 싶지 않아.라고 말해놓고 막상 하게 되면 누구보다 열중하게 되거든요. 입으로는 재미있지 않다면서 끝까지 퍼즐을 놓지 않는 이유가 뭘까요? 그리고 마지막 완성된 퍼즐을 보며 흐믓한 미소를 짓는

<15년 전의 날씨>를 읽으면서 어색한 기분이 들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인 볼프 하스와 여기자와의 인터뷰 내용이거든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기만 하고-엄밀히 말하면 읽는 거지만요- 묵묵히 있어야 하는 답답함을 느꼈어요. 전혀 내용을 알 수 없는 대화에 끼어 있는 상태였어요. 볼프 하스가 말하길, 추리소설처럼 독자들이 미리 결과를 알아버리면 김이 빠지니까 이젠 안쓴다고 할 때부터 짐작했어야 되는데, 이 소설은 만만치 않았어요.

독일어로 Wetter [베터]는 날씨, 폭풍우, 광산 갱도 안에 있는 혼합 가스, 독가스, 폭발성이 있는 가스를 지칭한다.

 -이런 정보를 맨 앞장에 적어 놓은 이유를 책의 마지막 장까지 읽고서야 알았어요. 전 단순한 독자라서 작가의 심오한 의도를 헤아릴 겨를 없이 읽었거든요. 여기자가 처음에 한 질문대로 볼프 하스는 결론을 처음부터 밝히고 들어간 거죠. 하지만 섬세한 부분은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 저를 무척 답답하게 하더군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두 사람은 이미 소설의 모든 내용을 알고 있지만 전 아는 게 없으니까요.  그러다 문득 알게 됐죠. 

15년 전의 날씨에 대해 우리가 별로 궁금해 하지 않듯이 소설의 주인공인 비토리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였어요. 볼프 하스가 그를 소설의 주인공으로 쓰기 전까지는요. 그냥 별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는데, 그것을 흥미로운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 바로 두 사람의 역할이구나. 마치 이건 비밀인데 말야.하면서 한껏 궁금증을 유발해서 집중하게 만드는 거죠. 그들의 대화에 집중하지 않으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으니까요.대단한 능력의 소유자란 걸 인정해야겠어요. 한 권의 책을 쓰면서 독자에게는 두 권의 책을 읽은 것처럼 만들었고 돌멩이를 은별처럼 만들었어요. 진부하지만 언어의 연금술사라고나 할까. 나중에는 여기자와 볼프 하스 간에 대화 자체가 더 흥미로웠어요. 분명 서로 공적으로 만난 사이지만 소설을 통해 뭔가 통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여기자의 지적이고 예리한 질문을 통해 볼프 하스가 새롭게 자신의 글을 해석하기도 했죠.

재미있던 표현은

 사람들이 이런 소설을 읽을 때면 왜 자동적으로 자신들의 이성은 옷장에다 그대로 둔 채로 두 사람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것인지,…”

볼프 하스와 여기자는 공적인 인터뷰 중인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5일이란 시간- 뭔가 서로에게 끌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볼프 하스의 말처럼 두 사람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독자의 심정일까요? 하지만 마지막 부분을 읽는다면 그런 느낌 테러를 받을 거예요.

“….헛기침은 억누르고 있는 강력한 이의 제기의 표현이거나, 침묵하고 있는 공동체 앞에서 발언하고 싶다는 의사 표현이 아니라, 오랫동안 침묵이 계속되는 상황을 참지 못해서 사람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그런 것이었다.

소설의 초반부에는 저도 헛기침이 나왔어요. 그러나 중반부를 넘어서니 헛기침 그 자체가 재밌어지더군요. 말의 묘미를 알게 해주는 독특한 책이었어요. 과연 여기자와 볼프 하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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