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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실시 일상신비 사건집 ㅣ 허실시 사건집
범유진 외 지음 / 고블 / 2023년 7월
평점 :
이름이 지닌 힘은 센 것 같아요.
한때 엄청 무섭다고 소문난 공포 영화의 제목이 실제 지역의 이름과 같아서 시끄러웠던 적이 있었는데, 제가 그 지역 사람이라도 기분이 안 좋았을 것 같아요. 지금도 그 지역명을 말하면 영화가 먼저 떠오를 정도로 강렬하게 각인된 걸 보면 함부로 이름을 가져다 쓰면 안 될 것 같아요.
책 제목을 보자마자 '허실시'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할 것 같은, 가상의 도시 이름으로 제격인 것 같아요.
《허실시 일상신비 사건집》은 '허실시'라는 가상의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한 미스터리 소설집이에요.
첫 장에는 허실시에 관한 간단한 소개글이 나와 있는데, 밑자락을 아주 멋지게 깔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싶네요.
"허실시의 연원은 조선 중기 문신 김중환의 문집 『지구집』에서 찾을 수 있다. 헛개나무 열매가 마치 매실처럼 커다랗게 열리는 고을이라 '헛매실골'이라 하던 것이 와전되어 '허실골'이 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虛實町 (허실정)'이라는 한자가 붙어 지금의 '허실시'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 시절 일제는 토지 정리를 할 때 땅의 기를 죽인다며 이름의 유래와 상관없는 한자를 끼워 맞추곤 했다는데, 아마도 '허허로운 과실'을 의도했을지도 모를 그 작명은 당시 허실정에서 고동보통학교 교장을 하던 이로 하여금 묘한 오해를 하게 만들었다.
... 여하튼 지기 탓인지, 미묘하게 낙후된 탓인지, 사람들의 기질 탓인지, 여기 허실시에는 유독 '아슬아슬한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고. 나는 바람결 타고 물결 타고 내 귀에 들어오는 그러한 일들을 언제부터인가 수집하고 정리하여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 " - 20■■년 ■■월, 정든 '이야기의 고향'에서 진설주 (향토사 연구자) (7-10p)
이 책에는 다섯 명의 작가들이 각각의 일상 미스터리를 들려주고 있어요. 범유진 작가님의 <달면 삼키는 안다정>에서는 허실시 간판 빵집인 '허실당'의 말단 직원 안다정이 탐정 역할을 한다면, 그린레보 작가님의 <내 세상의 챔피언>에서는 주인공 '나'의 챔피언이었던 똑똑한 언니가 있어요. 김영민 작가님의 <작당모의 카페 사진동아리의 육교 미스터리>에서는 육교에서 추락사한 사건을 추적한다면, 박하루 작가님의 <돌아다니는 남자>에서는 이상한 남자에 관한 루머를 파헤치고 있어요. 정마리 작가님의 <둘리 음악 학원 신발 실종 사건>은 피아노 학원에서 아이들의 신발이 자꾸 사라지는 미스터리를 다루고 있어요. 동네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주민들이 나서서 해결하기 위한 애쓰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그곳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어요. 소름끼칠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이상한 사건들이라 묘하게 끌렸던 것 같아요. 무심하게 넘겼다면 몰랐을 사건의 전말, 그 속에 감춰진 이야기를 알아가는 재미가 있네요. 가장 신경쓰였던 건 어쩐지 남일 같지 않다는 거예요. 우리 동네라고 예외는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