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순정복서
추종남 지음 / 북다 / 2023년 7월
평점 :
스포츠 세계에서는 새까만 신인이 독보적인 챔피언을 무너뜨리는, 드물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져요. 이러한 신인을 다크호스라고 부르던가요. 이 소설의 주인공도 단숨에 천재 수식어를 갖게 된 복싱 선수예요.
세계 프로 복싱 챔피언이자 세계적 스타였던 에스토마타가 팬 서비스로 유망주들의 원 포인트 레슨을 해줬는데, 유일한 여자 선수였던 열여덟의 이권숙이 겁도 없이 라이트 어퍼컷으로 세계 챔피언을 K.O 시키면서 단숨에 세계 챔피언 타이틀매치로 직행하게 돼요. 이것만으로도 드라마틱한데, 복싱 천재 권숙이 경기를 앞두고 투병 중인 어머니가 사망하자 그대로 잠적했다가 며칠 후 은퇴 선언을 했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워요. 여기서 끝났다면 허무개그 수준이지만 소설은 은퇴했던 권숙을 기어이 링 위에 올리면서 시작되고 있어요.
《순정복서》는 추종남 작가님의 소설이자 제2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이라고 해요.
8월 방송 예정인 KBS 드라마 <순정복서>의 원작소설이라는 점, 소설을 먼저 읽고 나니 드라마가 굉장히 기대가 되네요.
천재 복서 권숙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끔찍한 재능 때문에 불행해졌다고 믿고 있어요. 그래서 은퇴 후 조용히 유치원 보조교사로 살고 있는데 돈독이 오른 인간들이 그녀를 가만두지 않아요. 선수들의 단물만 쪽쪽 빨아먹고 버리는 악질 에이전트로 소문난 김태영이 권숙의 진심을 알아채고 교묘하게 접근하면서 천재복서의 복귀쇼를 추진하게 돼요. 김태영이 나쁜 놈인 건 확실한데, 사람의 진심을 꿰뚫어볼 줄 아는 능력만큼은 인정해야겠네요. 욕망을 쫓아가는 인간들의 속성을 본인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더 나쁜 놈들, 나쁜 놈을 욕하기엔 죄다 나쁜 놈 천지라서... 과연 진짜 나쁜 놈은 누구일까요. 세상을 더럽히는 나쁜 놈들과 대비되는 이권숙, 그녀야말로 '순정복서'가 맞네요. 순수하고 올바른 그 마음이 폄하되는 요즘, 순정복서야말로 현대판 돈키호테였네요.
"난 링으로 안 돌아가요. 죽어도 복싱 안 해."
"나는 죽어야 복싱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는 건가요?"
"그럼 지든가, 씨발!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는데 이권숙이 천재가 아니란 말을 누가 믿어?"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아저씨 말대로 차라리 졌다면 나한테 관심을 안 가졌을 텐데."
"집시다. 일단 복귀해서 무조건 집시다."
"이 아저씨가 정말, 복싱 안 한다구요!"
"일부러 지는 경기를 해서 천재가 아닌 걸 증명하면 되잖아. 그러면 당당하게 은퇴도 하고 협회가 괴롭히는 일도 없을 거야. 내가 도와줄게."
"복싱을 완벽하게 그만둘 수 있게 만들어줄게." (67-68p)
김태영이 추진하는 승부조작, 제대로 성공하게 될까요. 남들이 정한 기준에 따라 살아가며 그게 전부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지, 성공도 좋고 출세도 좋지만 그것들이 전혀 행복을 주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하지만 일반인의 관점에서 천재는 늘 부러움의 대상인지라 권숙이 그토록 본인의 재능을 저주하며 도망치는 모습을 온전히 이해하긴 어려웠어요. 누구는 잘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방황하고 좌절하는데, 천재는 적어도 독보적인 재능을 지녔으니까, 아무래도 가진 자의 배부른 고민처럼 느껴지는 측면이 있었거든요. 근데 꿈의 관점에서 바라보니 완전히 달라졌어요. 인생의 행복은 마음의 문제인데, 그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해야 한다면 그보다 불행한 일은 없을 테니까요. 권숙은 태영이 틀어놓은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되는데, 그건 뮤지컬 <돈키호테> 주제곡인 "이룰 수 없는 꿈"이에요. 이 소설을 읽고나서 오랜만에 이 노래를 들었어요. 가사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들으니, 뭔가 가슴에 확 꽂히네요.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슬픔, 견딜 수 없다 해도. 길은 험하고 험해도....... 정의를 위해 싸우고, 사랑을 믿고 따르며, 잡을 수 없는 별일지라도, 힘껏 팔을 뻗으리라. 이게 나의 가는 길이요.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따르리라. 내가 영광의 이 길을 진실로 따라가면 죽음이 나를 덮쳐와도 평화롭게 되리. 세상은 밝게 빛나리라. 이 한 몸 찢기고 상해도 마지막 힘이 다할 때까지. 가네, 저 별을 향하여."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