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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을 두드리는 그림 - 수도원에서 띄우는 빛과 영성의 그림 이야기
장요세파 지음 / 파람북 / 2023년 6월
평점 :
언제부턴가 그림이 주는 힘을 알게 되었고, 종종 기운을 얻고 싶을 때는 가만히 바라보곤 했죠.
말없이 전해지는 뭔가가 있다고 느꼈는데, 장요세파 수녀님은 "창을 두드리는 소리,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라고 표현하셨네요.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깊은 울림이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나의 창을 두드리는 그림》은 그림 읽어주는 장요세파 수녀님의 책이에요.
이 책에서는 저자의 창을 두드리는 그림들을 소개하면서 그림에 담긴 화가의 마음을 읽어내고 있어요. 수녀님의 그림 묵상집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림을 감상하는 것과 묵상하는 건 완전 다른 차원의 일인 것 같아요. 그림 자체는 물론이고 화가의 생애나 삶까지 깊이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번득이는 통찰들을 끌어내고 있어요. 삶의 고난에도 결코 손상되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을 발견하는 과정인 것 같아요.
우선 책 표지 그림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 같아요. 맨처음 창을 두드린 그림이자 묵상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그림이거든요. 어두운 배경 때문에 자세히 오래 바라보게 되는 건 화가의 의도였을까요. 은둔의 화가로 알려진 빌헬름 하메르스회라는 덴마크 근대의 대표 화가 그림인데, 작품명은 화가가 10년 이상 살았던 거리의 주소 <Courtyard Interior at Strandgade 30>라고 하네요. 이 집에 살면서 집의 내부를 수많은 그림으로 남겼고, 그림의 모델도 자신의 여동생, 어머니, 아내였다고 하네요. 집 내부와 아내의 뒷모습이 그림 소재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자신의 작품 전시회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정도로 은둔의 삶을 살다가 마흔 살 초반에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하니, 그에게 그림이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전반적으로 어두운 그림 안에는 열린 창문 너머로 한 여인이 고개를 숙인 채 뭔가를 보고 있는데, 유일하게 그 부분만 환하게 빛이 감돌고 있어요. 어둠과 대조되는 그 작은 빛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저자는 여인의 푸른색 모자가 이 그림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강조하고 있어요. 다른 그림에서 여인들은 검은색이나 회색이 주를 이루는데, 이 그림에서는 여인을 중심으로 빛이 발산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특별한 거죠. 거대한 어둠을 뚫고 나오는 빛, 그것이 내뿜는 밝은 광선에서 저자는 희망을 읽어냈네요.
제 마음을 두드린 작품은 돌기둥을 짊어진 여인의 조각상이에요. 13세기 제작된 독일 란다우 성당의 기중 받침대인데 조각가가 누구이며 누구를 표상하는지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요. 여인의 표정이 평온해보이는 데다가 허리를 짚고 있는 왼손에서 힘이 느껴져서 저절로 영차영차 응원하게 돼요.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딱 감당할 만큼의 짐을 짊어지고 있어서 다행이다 싶고, 그 짐이 삶의 무게로 보였어요. 저자는 그 짐이 무겁지 않은 게 아니라 사랑으로 져야 할 짐이라서 가벼운 거라고,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86p)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이 절로 떠오르는 그림이라고 이야기하네요. 여인에게서 사랑의 달콤함을 느꼈다니, 역시 세상만사 마음 먹기 나름이라는 깨달음을 주네요. 자신을 바라보는 눈 그대로 세상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림은 눈으로 보지만 눈이 아닌 마음이 본다고, 아니 창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고 해야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