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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도서관
정은오 지음 / 씨엘비북스(CLB BOOKS) / 2023년 6월
평점 :
힘들고 답답한 순간에, '이번 생은 글렀어'라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리고 상상했더랬죠. 이번 생의 모든 기억을 간직한 채로 다음 회차의 생을 살 수 있다면 훨씬 잘 살지 않을까.
땡! 얼른 정신을 차려야지 싶어서 상상은 거기서 멈췄네요. 근데 누군가는 놀랍고 흥미로운 소설 한 편을 완성했네요.
《마녀 도서관》 은 정은오 작가님의 소설이에요.
"나는 엑스트라다." (7p) 라는 문장으로 시작되고 있어요. 처음부터 강력한 비밀을 쏟아내고 있어요. 독자 혹은 관객의 입장에서 주인공이 아닌 엑스트라에게 관심을 두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여기에선 달라요. 엑스트라인 로즈마리가 주인공인 이야기니까요.
남작 가문의 둘째 딸인 로즈마리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있어요. 그건 바로 전생을 기억한다는 것.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책 빙의' 장르 속에 살고 있는 엑스트라 중 하나였다는 사실, 즉 전생을 기억하는 상태로 2회차 인생을 살고 있어요. 현재의 삶은 책에 적혀 있는 그대로 흘러가고 있어요. 엑스트라인 로즈마리는 그저 주인공의 배경으로 조용히 지내려고 했는데,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이 오고 말았어요. 내 가족을 건드리는 건 못 참지! 미래의 비극을 막기 위한 로즈마리의 선택은, 놀랍게도 마녀가 되는 거예요.
운명이란 무엇일까요. 만약 로즈마리처럼 모두의 운명이 적힌 예언서를 펼쳐보게 된다면 어떨까요. 판타지 세계가 아니더라도 우리 현실은 늘 운명과의 대결이 아닌가 싶어요. 참고 견딜 것인가, 아니면 저항하고 바꿀 것인가. 매순간 선택의 연속인 것 같아요.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궁금하다면, 로즈마리의 이야기가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왜냐하면 그녀는 엑스트라로 태어난 자신의 삶을 후회하거나 슬퍼하기는커녕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거든요. 엑스트라면 어떠냐, 내 삶 속에선 내가 주인공이라고! 다만 주인공 때문에 나의 행복을 뺏긴다면 가만 있지 않겠어! 그 당당함에 반했네요.
가끔 신스틸러가 더 빛나는 작품을 볼 때가 있어요. 등장하는 시간은 짧지만 강력한 존재감을 뿜어내는 조연을 보면서 그 순간만큼은 주인공이라고 느꼈고, 깊은 감동을 받았던 적이 있어요. 조연이 주인공이 되는 순간, 뭔가 마법 같았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비밀이 풀렸어요. 물론 저만의 해석일 뿐이지만 그건 운명을 대하는 태도였다고 생각해요. 어떠한 운명이 찾아오든지 자신만의 방식으로 움켜쥘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