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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5월
평점 :
책을 읽는다는 건 새로운 세계로의 모험임을 깨닫게 해준 사람이 있어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당연히 그를 알기 이전에도 책을 읽었고, 책이 좋았지만 베르나르의 책은 한 단계 더 나아가게 만든 것 같아요.
'나'를 의식하면서 '책'과 교감하는 경험이랄까요. 보통 책을 읽으면 이야기 속에 빠져드는 건 쉬운 일인데 그 사이 사이에 자아를 깨우는 뭔가가 있다는 건 굉장히 특별한 일인 것 같아요. 신선한 자극이라 몹시 감동받았고, 이후로 쭉 베르나르의 책들을 읽게 된 것 같아요. 음, 어쩐지 짝사랑을 고백하는 기분이 드네요. 암튼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님이 데뷔 30년 만에 처음 선보이는 자전적 에세이가 나왔다고 해서 흥분했지 뭐예요.
유명 맛집에서 음식을 맛볼 순 있지만 그 주방에서 어떻게 만드는지를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요.
《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는 작가님의 삶과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신기해요.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잖아요. 천재 작가님이 들려주는 본인의 인생 이야기가 소설만큼이나 흥미진진하네요.
아르카나란 라틴어 arcanum 아르카눔의 복수형으로 책상의 서랍이란 의미부터 숨겨진 것, 비밀, 신비 등을 뜻한다고 하네요.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타로카드 22장 가운데 한 장씩을 뽑아 천일야화처럼 하나씩 진지하게 소개하고 있어요. 첫 번째 타로카드는 바보 혹은 광대로 번역되는 The Fool, 숫자 없는 (0번 또는 22번) 아르카나예요. 이 카드는 모든 성장 서사의 시작과 끝맺음을 상징한다고 해요.
살면서 진짜 죽을 위기에 처하는 경우가 흔한 일은 아닐 텐데, 열네 살에 겪은 한밤의 소동은 강렬한 도입부였네요. 인생의 찰나, 아주 짧은 시간의 이야기였지만 삶의 가치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순간이 뭔지를 알려주네요. '죽음은 이렇게 불시에 찾아오는 거구나.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나서 눈을 감았다. 삶의 매 순간을 값어치 있게 쓰기로 결심했다.' (19p) 어린 나이에 이런 경험을 한 것도 놀랍지만 그로 인해 깨달음을 얻었다는 자체가 대단하네요. 아무리 경험을 많이 해도 깨닫지 못하면 실수는 반복될 수밖에 없으니까, 현명함이란 결국 그 깨달음을 얻느냐 여부에 달린 것 같아요.
작가적 상상력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아버지가 침대 머리맡에서 들려주던 이야기, 어머니가 손에 쥐어준 크레파스와 커다란 종이, 본인이 지어낸 이야기들... 확실한 건 학교 시스템은 영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권위적인 어른들의 강압적인 교육 방식이 상상력과 창의력을 가로막는 바람에 독창적이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 시련이 때론 강력한 원동력이 되듯이 그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리라 맘 먹었고 이뤄냈네요. 저자는 여덟 살하고 6개월에 쓴 여덟 장 짜리 이야기가 『개미』의 첫 버전이었다고 해요. 이 책의 원제는 "개미의 회고록"이며, 『개미』의 작가로서 대중에게 알려졌기에 개미처럼 글쓰기를 해온 지난 30년을 돌아보는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어요. 독자 입장에선 반가운 작가의 선물 같은 이야기였고요. 인간의 관점에서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제가 조금이라도 성숙해졌다면 그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들과 함께 한 덕분이에요. 앞으로도 쭉 같이 살아갈 작가와 책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