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의 용이 울 때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2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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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의 용이 울 때》 는 이어령 교수님의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두 번째 책이에요.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로는 여섯 번째 책이자 유고 원고로 출간되었어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이어령 교수님은 우리들에게 아직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를 남겨주셨네요. 꼬부랑 할머니의 꼬부랑 고개를 넘어가는 옛날 이야기마냥 한국인 이야기는 꼬부랑 열두 고개를 넘어가는 이야기예요. 이야기를 듣기 전 우리가 준비할 건 딱 하나예요. 기존의 지식을 깨끗이 지우고 새로운 눈으로 볼 것.

이번 책의 주인공은 땅속의 용이라 불리는 지렁이예요. 흙과 생명을 만들어내는 숨은 영웅, 땅속에 묻혀 있는 위대한 영웅 지렁이를 통해 인류 진화와 생명의 역사를 들려주고 있어요. 진화론의 찰스 다윈은 40년간 지렁이를 연구했고, 그 결과 <지렁이의 활동과 분변토의 형성>(1881)에서 지렁이가 땅속의 유기물을 분해하여 토양을 기름지게 해준다는 관찰 내용을 정리한 책을 냈어요. 다윈 서거 40주년 행사에서 사람들은 "나는 당신의 '바보 같은 실험'을 사랑합니다 ( I Love your Stupid Experiment)"라고 쓴 피켓을 들었다고 하네요. 우리 속담에도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왜 하필 지렁이였을까요. 지렁이를 가장 약한 존재로 여긴 거죠. 모든 동물의 밥, 낚시할 때의 미끼인 지렁이가 역설적으로는 생명력이 가장 센 생명체라고 하네요. 더군다나 지렁이가 없었다면 우리는 농사를 지을 수 없었을 거예요.

긴 이야기를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라고 해요.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영화로도 제작되었을 정도로 유명한데, 제목은 저자 헤밍웨이가 지은 게 아니라고 해요. 종의 의미는 조종(弔鐘 : 사망자가 생겼을 때 울리는 애도의 종)이며, 영국 성공회 사제이자 시인이었던 존 던(1572~1631) 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라는 시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어요. 저자는 우리들이 뭘 안다는 건 사실 아는 게 아니라 표면만 보고 스쳐지나간 거라고, 인생의 의미들은 저 깊은 땅속, 넓은 바닷속에 있다면서 존 던의 시를 소개하고 있어요. 다른 이의 죽음이 곧 내 일부의 죽음이라는 것, 우리는 대륙처럼 이어져 있다는 것.


누구든 그 자체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대양의 일부다.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가면 우리 땅은 그만큼 작아지며,

모래톱이 그리되어도 마찬가지다.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領地)가 그리되어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의 죽음도 나를 손상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위하여 조종(弔鐘)이 울리는지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다.

- 존 던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전문 ( 29p)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윤동주의 <서시>에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고 말한 이유는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저는 하이데거가 아렌트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에 적힌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인 "Amo : Volo ut sis. 아모르 볼로 우트 시스, 사랑합니다. 당신이 존재하기를 원합니다."가 땅속의 용이 우리에게 전하는 울림이라고 느꼈어요. "살려줘"라는 소리 없는 외침은 어쩌면 사랑에 대한 갈구가 아닐까요. 이세상이 고통이어도 함께 살아내자고, 서로를 살아가게 하는 것이 사랑의 유일한 가치라고, 저 땅 아래에서 간절하게 울려대는 흙의 소리라고 말이죠. 이어령 선생님은 첫 책 <흙 속의 저 바람 속에>에 대해 "거울 속의 자기 심장을 부리로 쪼는 그 앵무의 아픔, 외로움,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자기 분신의 모색과 닮은 데가 있다", "어둡고 살벌하고 답답하게 한국의 자화상을 그렸다" (61p)라고 고백한 적이 있대요. 또한 우리들의 성장은 밤 속에서, 그리고 폭풍 속에서, 역리의 거센 환경 속에서만 이루어진다고도 하셨대요. 세월이 흐른 뒤에 새롭게 한국인 이야기를 쓰고자 했고 생명이 다할 때까지 이 작업에 매달리셨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시 쓴 흙과 바람의 이야기 속에서 찾을 수 있어요. 밟힌 지렁이, 밟힌 자들의 역사에서 우리는 지렁이의 울음을 들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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