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 모퉁이 집
이영희 지음 / 델피노 / 2023년 5월
평점 :
...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런 약속의 전설이 있더란다.
헛되이 죽지 않은 꽃혼을,
그 꽃혼을 기억하는 누군가가,
그 마음이 우정이든, 사랑이든, 무엇이든지 간에,
변치 않고 3년간을 찾아 준다면
다시 온전한 몸으로 부활할 수 있다는......
안개꽃의 꽃말은 <약속> (352p)
《그 모퉁이 집》은 이영희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아름답고 기묘한 모퉁이 집에는 놀라운 이야기가 감춰져 있어요. 아무나 볼 수 없고 아무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꽃이 되듯, 꽃들이라고 해서 다 똑같은 꽃이 아니며 저마다의 사연과 꽃말을 품고 있어요. 굉장히 독특하게도 꽃을 소재로 한 판타지 세계를 보여주고 있어요. 바로 그 장소가 모퉁이 집이며, 일제 강점기의 마지막 해인 1945년 큰 화재로 타버린 채 방치되다가 최근 공사를 시작하더니 전체적으로 하얀 집이 완공되었어요. 집주인 '모도유'와 이웃집에 사는 '한마디'의 묘한 첫만남은 호기심을 자극하네요. 과연 그 집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요.
일제강점기 시절과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 속에 구슬프고 처연한 아쟁 연주와 창포꽃 향기에 빠져들게 되네요. 주인공 '한마디'가 도유와 같은 골목길 세 집 건너에 있는 박태기나무 집에 살고 있는 것과 국악원 아쟁 연주자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닐 거예요. 서서히 향기가 퍼져나가듯 80여 년 전 그 사건 속으로 다가가고 있어요. 진실의 뚜껑이 열리고, 그 안을 들여다보는 건 오직 마디의 몫이에요.
소설을 읽고나서 윤심덕이 부르는 <사의 찬미>와 아쟁 연주를 들었어요.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 너에 가는 곳 그 어데이냐 /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 눈물로 된 이 세상이 / 나 죽으면 고만 알까 / 행복 찾는 인생들아 / 너 찾는 것 허무 /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 너는 칼 우에 춤추는 자도다 / 허영에 빠져 날 뛰는 인생아 / 너 속였음을 네가 아느냐 / 세상에 것은 너의게 허무니 / 너 죽은 후는 모두 다 없도다." 슬프지만 찬란한 사랑이여, 인생이여... 아쟁은 국악기 중에서 유일한 저음 현악기라는데 바이올린과는 사뭇 다른 느낌의 선율로 심장 깊숙히 파고드는 것만 같아요. 공교롭게도 2023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그 모퉁이 집은 아쟁 선율과 함께 기억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소환하고 있네요. 일제강점기의 아픈 이야기는 그저 먼 과거의 일이 아니라는 것, 우리는 지금 너무도 중요한 변곡점에 서 있네요. 꽃혼들은 반드시 약속을 지킨다고 했던가요. 꽃들이 1년 내내 피어서 시들지 않는 땅, 거친 바다 소용돌이와 보라색 안개가 지키는 비밀의 땅은 꽃혼들의 고향이에요. 그 꽃혼을 기억하는 우리는, 구할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