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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보자기
도광환 지음 / 자연경실 / 2023년 5월
평점 :
아름다움에 눈길이 가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근데 미술은 약간의 심리적 장벽이 있어요. 순수한 감상마저도 평가 대상이 될 것 같은 쫄림이랄까요.
첫단추가 잘못 끼워진 탓이 아닐까 싶어요. 미술, 음악 등 예술 분야를 교과서로 처음 접하다 보니, 습득해야 할 교양 지식이라는 선입견이 생긴 것 같아요.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미술 전시회나 명화 작품집, 양질의 미술 관련 책들을 통해 서서히 그 벽이 낮아지고 있다는 거예요. 개인이 느끼는 감성이 중요한 것이지 정해진 답을 찾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 그러니 쫄지 말고 즐길 것.
《미술 - 보자기》 는 전문가가 아닌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의 감상문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반가운 책이에요.
저자는 약 25년 동안 수많은 현장에서 보도사진을 찍어온 사진기자였고, 현재는 연합뉴스 '글로벌 코리아 본부' 산하 'K컬처기획팀장'을 맡고 있다고 해요. 연합뉴스에서 [미술로 보는 세상]이라는 제목으로 매주 한 편씩 미술칼럼을 쓰고 있으며, 약 1년 전 시작한 SNS에 올린 미술 감상문 덕분에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하네요. 굉장히 미술에 조예가 깊은 분이구나 지레짐작했는데 본투비가 아님을 고백해서 좋았어요. 2013년에 런던 버킹검 궁 접견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미술에 관심이 없어서 그림들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느라 작품들은 거들떠보질 않았대요. 근데 딱 일 년 뒤인 2014년에 이탈리아 밀라노를 방문해 후배가 예약에 성공한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관람하면서 '영혼의 떨림'을 경험했대요. 10여 명, 15분 간 관람이라는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감상하니 비로소 예술이 주는 감동을 느꼈고, 그즈음부터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대요. 쉬운 책부터 찾아 읽고, 익숙한 그림부터 보기 시작하면서 미술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었대요.
이 책은 세상의 중심인 '나'를 통해 바라보는 미술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르네상스 시기의 미술에서 시작해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서양 미술을 중심으로 작품 소개와 함께 저자의 주관적인 해설과 감상의 글을 만날 수 있어요. 서양의 역사에서 르네상스는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변화하는 시기이며, 예술 전반에 자유로운 개인, 즉 '나'라는 존재가 등장했다는 점에서도 놀라운 혁신의 시기라고 볼 수 있어요. 그래서 책의 내용도 미술사적 지식의 나열이 아니라 작품을 보는 '나'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나'에 대한 고찰, 자화상, 가족, 친구, 이웃, 연인 그리고 부부, 엄마, 여성, 신화, 종교, 역사, 도시, 자연, 상상, 표현, 최초, 다시 자화상들이라는 주제로 여러 작품들에 관한 감상을 들려주고 있어요.
책 표지 그림은 구스타프 클림프의 <메다 프라마베시> (1913) 이며, 클림트의 후원자가 그의 딸 초상을 부탁해 그린 전신 초상화라고 해요. 저자는 이 작품이 클림트 특유의 관능미가 보이지 않아서 편안히 감상할 수 있다고, 무엇보다 소녀의 성장을 상상하며 <왕벌의 비행>과 <베토벤 프리즈>를 들으며 감상하기를 권하고 있어요. 나풀거리는 하얀 원피스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당당함을 드러낸 소녀의 몸짓이 마음에 들어요.
러시아 여성 화가, 마리 바시키르체프의 <책에서> (1882)라는 작품은 책을 읽고 있는 여성의 손과 진지한 표정에서 현실감이 느껴져요. 거창한 서사 대신 일상적인 묘사가 주는 편안함 속에 화가 자신의 정체성이 담긴 것 같아요.
책 제목이 '미술 - 보자기'인 이유는 저자가 "미술을 보는 일로 자신을 기억하는 힘" (9p)을 갖추고 싶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미술을 통해 '나'를 찾아가는 여정, 그 마무리엔 시 한 편이 적혀 있어요.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오는 저녁 숲가에 서서>라는 시 (영문학자 장영희의 번역)를 읽으며 나만의 약속은 무엇인가를 생각했어요. 세련되고 우아한 미술 보자기 속에서 자신만의 것을 찾아보세요.
'이 숲이 누구 숲인지 알 것도 같다. / 허나 그의 집은 마을에 있으니
내가 자기 숲에 눈 쌓이는 걸 보려고 / 여기 서 있음을 알지 못하리.
다른 소리라곤 스치고 지나는 / 바람소리와 솜털 같은 눈송이뿐.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깊다. / 하지만 난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 / 잠들기 전에 갈 길이 멀다.' (372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