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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드 에어포트
무라야마 사키 지음, 이소담 옮김 / 열림원 / 2023년 4월
평점 :
공항에 가면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요.
여행자들에게서 느껴지는 설렘과 흥분이랄까. 물론 제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공항이라는 장소는 늘 즐거운 여행을 연상시켜서 좋은 것 같아요.
제목부터 행복한 결말이라 마음에 쏙 들었어요. 요즘은 골치 아픈 일들뿐이라 살짝 우울했거든요.
《해피엔드 에어포트》는 무라야마 사키 작가님의 소설이에요.
공항에 머무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각자 자신의 삶을 사는 타인들이지만 공항이라는 공간에서 만나게 되고, 스치듯 지나칠 수도 있는 우연을 따스한 인연으로 풀어가고 있어요. 료지 씨는 서른다섯 살의 만화가인데 도쿄의 삶을 정리하고 귀향하는 길이에요. 아픈 형과 연로한 부모님 곁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이지만 속내는 꿈을 포기한 자신에게 실망하고 있어요. 꿈도 사랑도 잃어버린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데, 비행기가 연착되면서 공항을 둘러보다가 초상화를 그려주는 상점에서 예상치도 못한 경험을 하게 돼요. 처음엔 료지 씨의 나이를 모를 때는 굉장히 늙은 남자로 착각했어요. 그만큼 모든 걸 놓아버린 듯 패배자 같은 느낌을 줬는데 환하게 웃는 초상화를 본 순간 달라졌어요. 잊고 있는 미소, 료지는 사랑받고 자란 아이답게 늘 미소를 짓는 아이였고 어른이 되어서도 밝은 심성으로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원하는 성과를 얻지 못하자 좌절했고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했던 거예요. 파랑새는 머나먼 나라에 있는 게 아니라 늘 우리 곁에 있었다는 걸 잊었던 거죠.
공항 서점에서 일하는 유메코는 어릴 때마다 꿈 많은 아이였고 책을 좋아했던 터라 지금 일을 사랑하고 있어요. 아름다운 벚꽃을 바라보다가 문득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에 들렀던 공항에서의 추억이 생각났고, 꿈이라고 여겼던 장면들이 마법처럼 펼쳐지는데... 평범해 보이는 유메코는 자신도 모르는 놀라운 능력을 지닌 것 같아요. 그건 주변 사람들을 향한 따스한 마음이에요. 눈에 보이진 않지만 그 착한 심성 덕분에 주변 모두가 행복하다는 걸, 유메코 본인만 모르는 것 같아요.
신인 작가상을 수상하러 온 메구미와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마유리가 공항 서점에서 마주치는데, 두 사람은 원래 중학교 시절의 절친이었으나 공항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영영 헤어지고 말았어요.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요. 오랜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된 두 친구가 우연히 공항에서 만난 것도 놀랍지만 그들이 발견한 이 사람도 신비로워요. 얼핏 할머니로 보이지만 마녀라는 걸 단박에 알아볼 수 있는 사치코의 사연은 슬프고도 아름다워요.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꽃을 피워주는 따스한 이야기에 덩달아 마음이 환해지네요. 봄의 공항에 벚꽃이 가득하고,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장면이 이 소설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듯 하네요. 좋은 바람이 부는 날까지, 이 문장이 마법주문처럼 스르르 제 삶에 들어오네요.
"인생에 실패나 배드 엔드가 있을까요.
살아 있는 한 이어지는 연재만화와 같다고 생각합니다만.
꼭 강제로 그만두지 않아도 돼요.
인생이라는 만화의 독자는 나 자신. 그리는 사람 또한 나 자신.
독자가 만족할 때까지 꿈의 알을 품고 있어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77p)
"... 아무튼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인간이란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좋은 바람을 타지 못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바람이 불기를 기다리면 됩니다.
분명 그래요. 차분하게 포기하지 말고.
좋은 바람이 부는 날까지." (78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