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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3년 5월
평점 :
한국사에서 고려거란전쟁만을 떼어 내어 본격적으로 탐구한 책은 처음인 것 같아요.
《고려거란전쟁》은 길승수 작가님의 역사 스토리텔링북이에요.
저자는 고려와 거란의 오랜 전쟁에 대한 진실을 알리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해요. 역사적 팩트를 담은 책이라고 하면 어렵고 딱딱하게 여길 수 있는데, 그러한 선입견을 깨고자 다양한 삽화와 사진 자료,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되 현대적인 언어로 가공한 대사를 삽입했고, 무려 14년이라는 시간과 공을 들여 이 책을 완성했다고 하네요. 확실히 색다른 장르의 역사교양서인 것 같아요. 주요 장면들마다 그림과 함께 실감나는 대사가 있어서 역사 드라마를 보는 듯한 재미가 있어요.
고려거란전쟁은 10세기 말부터 11세기 초까지 고려와 거란 사이에 벌어진 일련의 전쟁을 말하는데, 워낙 횟수가 많아서 크게 세 번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어요. 1차 전쟁은 993년(성종 12년), 2차 전쟁은 1010년(현종 원년), 3차 전쟁은 1018년(현종 9년)이에요. 원래 고려와 거란은 간헐적으로 사신이 오갔는데 거란이 우호를 맺어온 발해를 배반하여 멸망시킨 뒤로 왕건은 단교를 선언했어요. 그러자 거란이 태세를 전환하여 사신단과 낙타를 보냈는데 왕건은 거란의 사신단을 섬에 유배 보내고 낙타는 만부교 아래 매어두어 굶어 죽게 함으로써 거란을 적대하겠다는 뜻을 만방에 선포했어요. 왕건은 고려를 세운 지 26년, 나이 67세에 눈을 감았고 후손들에게 훈요 10조를 남겼어요. 고려 성종은 태조 왕건의 손자로 고려의 여섯 번째 왕이고, 현종은 여덟 번째 왕이에요.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들이 쭉 나열되어 있다면 아무래도 흥미를 느끼긴 힘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탁월한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술술 읽을 수 있었네요. 새삼 이 책을 읽다보니 고려와 거란 사이에 벌어진 기나긴 전쟁에서 우리가 잘못 알거나 모르는 것들이 있다는 걸 배우게 됐네요.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외교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시점이라 서희와 같은 존재가 간절하네요.
거란에 군영에서 서희와 소손녕이 인사를 나누는 장면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와요.
소소녕 : "그대의 나라는 신라 땅에서 일어났다. 고구려 땅은 우리 소유인데도 그대들이 침범하고 있다. 또한 우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도 바다를 건너 송나라에 사대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의 출병이 있게 된 것이다. 만일 땅을 떼어 바치고 조공을 잘한다면 무사할 수 있을 것이다."
서희 : "그렇지 않다. 우리 고려는 고구려의 옛 땅에서 일어난 나라다. 그때문에 국호를 고려라 하고 평양에 도읍한 것이다. 국경 문제를 두고 말한다면, 거란의 동경도 모조리 우리 땅인데 어찌 우리가 침략해 차지했다고 하는가?"
(서희의 말에 소손녕은 할 말을 잃었다. 고구려와 고려는 혼용해서 사용하는 같은 국호였고, 평양을 서경으로 칭하며 수도의 기능을 부여한 것도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거란의 동경은 원래 고구려의 요동성이었다. 거란은 요동성을 점령하고 '동쪽 지역의 수도'로서의 역할을 부여하여 '동경'이라고 칭했던 것이다.)
서희 : "게다가 압록강 안팎도 우리 땅인데, 지금 여진족이 그 땅을 훔쳐 살며 길을 막고 있다. 그러니 거란으로 가는 것은 바다를 건너 송나라로 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조공이 통하지 않는 것은 여진족 때문이다. 만약 여진을 쫓아내고 우리의 옛 영토를 돌려준다면 어찌 감히 조공을 잘 하지 않겠는가?" (87-88p)
대사를 추가했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느낌의 책이 된 것 같아요. 한국사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올해 11월 방송 예정인 KBS 대하 드라마 '고려거란전쟁(가제)'의 원작자인 길승수 작가님의 책이라서 흥미롭게 읽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