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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고 MBTI 상담실 - MBTI를 매개로 청소년의 고민과 갈등을 담아낸 성장소설
정구복 지음 / 북오션 / 2023년 5월
평점 :
"너는 내가 응원하는 반이 이길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어? 저 반 아이들 알아?"
"아뇨.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잖아요. 강당 쪽으로 기울어 있으니 서편에 서는 반이 이기는 거죠."
그러고 보니 운동장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기울어진 것 같았다.
눈으로만 보는 나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그럼 줄을 남북으로 늘어놓으면 게임이 공정하잖아?"
"그렇게는 안 하죠. 줄을 빼고 넣는 게 편하잖아요.
교장 선생님이 보시려면 동서로 줄이 있어야 잘 보이잖아요." (61p)
대단한 통찰력을 지닌 아이, 미가를 보면서 놀랐어요.
오영진은 명륜고 국어 기간제 교사이자 3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고, 상담실에 머물고 있어요.
반 아이들 중 이화가 영진을 찾아와 자율 동아리 "명륜고 MBTI 상담실" 의 지도교사를 부탁하면서, 조이, 미가, 준수, 성빈까지 합류하게 됐어요.
이상한 기간제 계약 조건 때문에 담임이면서도 한걸음 떨어져 있던 영진에게 동아리 아이들이 성큼 다가오면서 펼쳐지는 이야기예요.
《명륜고 MBTI 상담실》 은 정구복 작가님의 청소년 소설이에요.
우선 정구복 작가님이 부평고등학교에서 교직을 시작하여 인천남고, 인일여고, 인천만수고, 인천국제고, 인천고잔고 등에서 윤리를 가르치고 있고, 현재 학생 진로지도와 학부모, 교사 대상 각종 특강 및 워크숍 강사로 활동 중이라는 소개글을 보고 신기했어요. 편견인지는 몰라도 제 경험엔 윤리 선생님의 이미지는 지루함과 고루함 그 자체라서 말이죠. 근데 청소년 소설을 쓰는 작가님이라니 완전 반전인 거죠. 저자의 경험일 리는 없는, 등장인물 오영진을 통해 아이들의 고민과 갈등을 보여준다는 점이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네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이야기 속에 숨겨진 그 마음을 읽었거든요. 소설에서 명륜고 운동장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기울어져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주인공 미가는 방학 동안 제주도에 가서 도깨비 도로를 보고 온 사연을 들려줘요. 제가 이 소설의 주인공을 미가라고 꼽은 이유는 하나예요. 미가와 비슷한 상황을 겪는 친구들이 진짜 자기다움을 찾아서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를 진심으로 원하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 교육 현장처럼 치열한 경쟁 속에서 줄을 서야 하는 아이들은 오직 1등만 주인공이 되고 나머지는 모두 들러리, 조연이 되고 마니까, 그게 너무나 싫어요. 잘못된 걸 바로 잡아야 할 어른들이 뒷짐지고 모른 척 하거나, 더 나쁜 쪽으로 끌고 가는 현실이 답답하니까, 아무래도 교사로 재직 중인 저자가 그 상황을 누구보다 더 많이 체감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청소년 소설이지만 당사자인 학생들보다 어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더 큰 게 아닌가 싶어요. 물론 또래 친구들에겐 다른 것들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소설 덕분에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보려고 노력했다는 거예요. 다소 무거울 수도 있는 내용을 흥미롭게 풀어낸 것 같아요.
"미가야, 그런데 너 아까 학교 하면 연상되는 게 왜 운동장이고 엄마야?"
"그냥."
"뭐가 그냥이야. 말해 봐."
"하고 싶은 말이 산같이 쌓였어도 꾹 참을 때 그냥이라고 하는 거야."
"엥, 뭐야?"
"그냥이지 그냥."
"난 그런 대화 모른다. 운동장은 그렇다 치고 엄마는 뭐야? 그것만 말해줘."
"운동장이 엄마 품 같아서. 어떤 애들은 엄마 품에서 맘껏 뛰놀고 어떤 애들에겐 그 품이 없고." (122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