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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평점 :
자연의 풍경은 덜어내거나 보탤 것이 없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되니까요.
하지만 사람의 말은, 똑같은 단어를 썼다고 해서 동일한 뜻으로 전해지는 건 아니라서 종종 오해와 갈등이 생기는 것 같아요. 구구절절 주저리주저리 쏟아놓을수록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요. 때론 침묵이 가장 현명한 선택일 때가 있어요.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언제 입을 다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안다면 말이죠. 무작정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말과 말 사이의 여백을 두는 거죠. 그래야 상대방이 생각할 틈이 있을 테니까요.
글은 어떨까요. 말과 다르게, 길면 길수록 더 많은 것들을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방대한 분량의 명작도 존재하지만 글자수는 형식일 뿐, 짧고도 강렬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 있어요. 바로 클레어 키건의 2009년 작품인 《맡겨진 소녀 foster》 가 그래요.
이 소설을 읽다가 "나는 망설임 없이 아저씨를 향해 계속 달려가고, 그 앞에 도착하자 대문이 활짝 열리고 아저씨의 품에 부딪친다. 아저씨가 팔로 나를 안아든다. 아저씨는 한참 동안 나를 꼭 끌어안는다." (97p)라는 대목에서 뭉클했어요. 왈칵 눈물이 났어요. 어린 소녀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들이 일렁일렁 밀려오는 순간이었어요. 다섯째를 임신한 엄마는 아빠와 상의 끝에 셋째 딸인 주인공 소녀를 친척집에 맡겼어요. 차를 타고 가는 과정이나 친척집에 도착해 대화를 나누는 아빠의 태도는 무심함 그 자체예요. 킨셀라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말이 많은 편은 아니고 무뚝뚝하지만 따뜻한 배려가 느껴져요. 소녀는 말 없이 그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고, 어떠한 설명 없이도 전부 이해가 되는 장면들이 펼쳐져요.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것, 그 심오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도록 작가는 묵묵히 기다려준 거예요.
소설의 마지막 문장 역시 얇고도 예리하게 마음을 파고드네요.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98p)
클레이 키건은 24년간 활동하면서 단 4권의 책만 냈는데, 그 모든 작품들이 "긴 단편소설"이라는 것, <가디언>은 키건의 작품을 "탄광 속의 다이아몬드처럼 희귀하고 진귀하다"라고 평했다는 것. 이 책을 덮으면서 문득 세상에서 가장 짧은 소설이라고 알려진 헤밍웨이의 글이 떠올랐어요. 단 여섯 개의 단어로 이루어진 소설, "For sale : Baby shoes. Never worn. ( 팝니다 : 아기 신발. 단 한 번도 신지 않았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