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다고 외치고 나서야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정순임 지음 / 파람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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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 않다고 외치고 나서야 괜찮아지기 시작했다》는 정순임 님의 인생 회고록이에요.

저자는 15대를 한 곳에 터 잡고 살아온 봉건시대 양반집 가문의 둘째이자 딸로 태어나 만만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고 하네요.

태어나면서 세상을 다 가진 맏아들 다음에 둘째로 태어난 딸이라서 차별 속에서 자존심을 키워나갔다는데 그 성격 때문인지 사남매 중에서 유독 엄마에게 야단을 많이 맞았다고 해요. 어릴 때는 딸이라서 서러웠고, 커서는 여자라서 힘들었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어쩐지 낯설지 않아요.

"괜찮다 괜찮다 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러려니 덮어두면 아무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죽는 날까지 살아질 줄 알았다.

50년이 넘는 시간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만 그런 것도 아니라고, 그러니 별 거 아니라고,

그냥 잊어버리자고 입 앙다물고 두 손 볼끈 쥐고 걸어왔는데, 괜찮아지지 않았다." (5p)

마음의 상처가 아닌 척 덮는다고 사라질 리 있겠어요.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괜찮지 않았던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어요.

책 표지와 본문 그림은 저자의 둘째 딸이 그렸다고 하네요. 둘째 딸인 엄마를 위해 둘째 딸이 그린 그림으로 완성된 한 권의 책이라니 멋진 것 같아요. 담담하게 살아온 이야기를 말하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요.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두 딸들에게 숨기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었을까라는... 자녀 입장에서는 부모의 괜찮지 않은 모습을 보는 일이 괴로울 수도 있으니까요. 장성한 자녀일지라도 부모 앞에서는 한없이 어린애가 되니까요. 그럼에도 이야기했던 이유는 딸들이 살아갈 세상은 자신과 다르길 바라니까, 더 나아지길 원하기 때문이겠지요. 그것이 엄마의 마음인 것 같아요. 쉰을 넘긴 딸은 과거 속 엄마에게 느꼈던 서운함을 이제서야 말할 수 있었고, 드디어 어린 순임이의 마음을 다독여줄 수 있었네요.

"결혼이란 것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일만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내가 사랑이라 믿었던 그것이 '여자이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고...' 라는

노래의 다른 버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러고도 많은 시간을 버티고, 견디고, 무너지고 나서야

그곳에서 걸어 나올 수 있었다." (88p)

누구도 벼랑 끝을 알고 달려가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사랑과 결혼은 동의어가 아님을 뼈아픈 경험으로 알게 된다는 건 슬픈 일이에요. 원가족 때문에 상처받았다고 여겼는데 훗날 저자를 붙잡아 준 이들은 친정엄마와 친오빠, 남동생이었네요. 이것이 가족의 힘이겠지요. 힘들게 하는 것도 힘을 주는 것도 가족이라는 사실. 세상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늘 고마운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 같아요. 때때로 아팠던 삶을 돌아보며 저자는 비로소 아름다운 삶의 꽃을 피웠네요. 존재하지 않았으면 하는 이야기라고 했지만 잘 버텨낸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산수헌에서 담그는 된장, 간장, 고추장처럼 오래 묵은 장맛 같은 인생 이야기였네요.

"슬픔이 말을 거는 날은 무엇보다 나를 설득할 수 있는 문장을 찾아내야 한다.

나를 설득할 수 있는 바람을 만나야 하고, 그런 하늘과 함께 바닷길을 걸어야 한다." (20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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