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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거리는 고요
박범신 지음 / 파람북 / 2023년 3월
평점 :
《두근거리는 고요》는 박범신 작가님의 산문집이에요.
2023년은 작가로 데뷔한 지 50년이 되는 해라고 하네요. 무엇이든 50주년이라고 하면 굉장히 특별하게 기념할 만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저자의 감회가 부끄러움이라니, 조금 놀라웠어요. 그 마음이 궁금했고,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나온 세월의 무게를 느꼈어요.
"데뷔 50주년을 자축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소설'을 펴내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에세이집을 내면서 작가 생활 50년을 말하는 게 왜 이리 부끄러운지. 책이 나오면 인적 없는 봄 강을 따라 오래오래 걸을 생각이다. 스스로 강이 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5p)
당연히 작가로서의 삶, 작품에 관한 내용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그냥 삶의 이야기라서 좋았어요. 특히 아내에 관한 부분은 현실 남편의 모습이라서 살짝 웃음이 났어요. '뻔한 농담 같은 말이지만, 나는 중년이 될 때까지만 해도 내가 일흔 살이 넘은 '할머니아내'와 살게 될 줄을 정말 몰랐다. 내 아내는 영원히 새댁이거나 새댁 같아야 한다고 믿었던 모양이다. 이거, 너무도 순진하여 오히려 슬픈 판타지가 아닌가." (201p)
한밤 중에 이혼을 떠올렸다가 늙은 아내의 잠든 얼굴을 보니 차마 이혼하자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고, 그 대신 다음 날 아침 아내에게 어디 먼 시골로 이사가자고 했더니 아내 왈, "당신 혼자 왔다 갔다 살아. 그건 오케이 할게." (156p)하더래요. 현명한 아내 덕분에 논산글방 '와초재'에서 혼자 머무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대요. 오랫동안 결혼생활을 유지한 비결이 뭔지 알겠네요. 스스로 '이야기하는 바람'이라고 말하는 저자를 아내도 바람처럼 지켜봤던 게 아닐까요. 흘러가는 대로 바람이 부는 대로... 어찌됐건 젊은 날 아내에게 철없이 맹세했던 대로 '곁에서 죽는 것'을 지켜보리라 믿고 있으니 아름다운 사랑, 인생의 마지막 축복이 아닐까 싶어요.
이제 끝이 다가오는군
이제 마지막 커튼도 내 앞에 있어.
나의 친구여, 확실하게 말해두지.
나는 나만이 알고 있는
나의 이야기를 할 거야.
(158p)
<마이웨이>의 가사 일부라고 해요. 저자는 숨이 탁 막힐 때 호숫가 외딴집으로 가서 이 노래를 들으며 숨을 고른다고 하네요. 나이든다는 게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함께 걷는 사람이 있다면, 따뜻한 정을 나눌 수 있다면, 사랑할 수 있는 오늘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들려줄 나의 이야기가 있다면 말이에요. 저자의 남은 꿈은 작가로서 '홀로 가득 차고', 사람으로서 '더불어 비어 있는' 삶이라고 해요. 우리 역시 다르지 않아요. 혼자 사는 인생 같지만 함께 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요. 무엇을 비워내고 어떤 것을 채울 것인가,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