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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 그 높고 깊고 아득한
박범신 지음 / 파람북 / 2023년 3월
평점 :
순례라고 하면 자꾸 산티아고 순례길이 떠올라요.
진짜 순례길을 떠나본 적이 없다보니 자주 보고 들은 곳이 먼저 생각났어요. 주변에서 그곳을 다녀온 얘길 듣다가, 자연스럽게 나도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언제라고 기약할 순 없지만 마음 준비 단계예요. 멀리 떠나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말이죠.
<순례>는 박범신 작가님의 순례기를 담아낸 산문집이에요.
우선 순례란 무엇일까요. 대개는 종교적인 신앙과 관련된 특정 지역을 찾아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요즘은 깨달음 혹은 자아성장을 위해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2023년 새봄, 저자는 이렇게 말했어요. "인생이란 시간을 따라 걷는 하나의 순례이다." (5p)라고요.
이 책에는 오래 전에 다녀온 히말라야와 카일라스 가는 길,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갔던 산타아고 길과 인생 여정으로서 폐암 일기가 수록되어 있어요. 왜 떠나는가, 이 질문은 순례자 스스로 던지는 질문이자 그를 지켜보는 이들의 궁금증이기도 해요.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걷는 것뿐인데 무엇을 위해 걸어가는 걸까요. 직접 걸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겠지요. 대신 우리는 그 길을 걷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드디어 해발 5,630미터의 돌마라 정상.
쓰러지듯 주저앉아 이미 구름 속에 몸을 감춘 카일라스를 눈으로 더듬어 찾는다.
구름에 가려 카일라스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수미산'이라고 부르는 그 산은 본래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카일라스가 정말 수미산일까. 나는 묻는다. 나의 수미산은 어디에 있는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
사방에 안개가 자욱하니 겨우 북한산 어느 골짜기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다.
나는 이제 어느 방향으로 가야 길을 찾을 수 있을까." (200p)
또한 모두가 걷고 있는 길, 바로 인생에 관한 솔직한 고백이 담겨 있어요.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면 억울한 일도 한걸음 떨어져 보면 오해든 착각이든 그럴 수 있겠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어요. 세상은 내 맘 같지 않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결국 언젠가는 깨닫게 될 테니까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한 뒤 현지 병원에서 폐렴 확정 판결을 받았고, 귀국해 폐렴 치료를 받던 중 폐암을 발견했다고 해요. 수술을 했고 새로운 순례길의 황홀한 초입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했어요. "한 생의 마감으로 순례가 끝나는 게 아니라는 것. 하나가 기울면 다른 하나가 솟아나고 하나가 사멸하면 다른 하나가 생성된다는 것. 순례는 영원히 계속된다는 것. ... 만약 내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고 해도 사랑하는 이여, 나의 죽음을 결코 차갑게 여기지 마소서. ... 나의 영혼도 부디 따뜻한 파동으로 느끼소서." (319p)
인간으로 태어나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 그 길 위에서 이야기 바람의 소리를 들었네요. '모든 생명은 언젠가 나의 어머니였던 적이 있다'는 티베트 불교의 잠언을 아주 어렴풋이 알 것 같아요. 우리가 제대로 깨달을 수만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을 텐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