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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 ㅣ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3
나카노 교코 지음, 조사연 옮김 / 한경arte / 2023년 3월
평점 :
《명화로 읽는 영국 역사》는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시리즈 세 번째 책이에요.
저자 나카노 교코는 와세다대학교에서 독일문학과 서양 문화사를 강의하고 있으며 독문학자이자 작가로 활동 중이라고 해요.
이 책은 나카노 교코가 명화를 통해 들려주는 영국 왕실의 역사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단순히 영국 역사에 관한 내용이었다면 크게 관심이 가진 않았을 텐데, 명화를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로서 역사를 바라보니 흥미로웠어요.
폴 들라로슈의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처형> (1833년)에는 천으로 눈을 가린 젊은 여자의 모습이 보이는데, 제목을 보지 않았다면 처형 장면인 줄 몰랐을 거예요. 이 그림 속에는 여왕 쟁탈전이 숨어 있어요. 헨리 8세가 죽고 에드워드 6세가 등극했으나 선천적으로 병약했던 소년왕은 오래 버티질 못했어요. 소년왕의 죽음 직후 사태가 급변했어요. 헨리 8세의 유언장에 따르면 왕위 계승 순위는 에드워드 다음에 순서대로 메리(첫째 왕비 캐서린의 딸), 엘리자베스(둘째 왕비 앤의 딸), 제인 그레이(헨리 8세 여동생의 손녀이자 헨리 7세의 증손)였는데, 메리가 여왕이 되면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노섬벌랜드 공작 중심의 프로테스탄트 일파가 밀려날 것을 우려해 미리 노섬벌랜드 공작의 아들과 제인 그레이를 결혼시켰어요. 이들은 에드워드 6세의 죽음을 숨기고 메리를 체포하여 처형한 뒤 제인을 여왕으로 옹립하려는 모략을 꾸몄으나 실패했어요. 메리가 음모를 눈치채고 자취를 감췄던 거예요. 여왕 쟁탈전의 결과는 9일 후에 드러났어요. 역사는 제인 그레이를 '9일 여왕'으로 기록하고 있어요. 여왕으로 추대되어 즉위했지만 고작 9일, 그것도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했어요. 제인은 권력에 눈이 먼 부모와 정치가에게 이용당해 열여섯 나이에 생을 마감했어요. 처형될 때에 제인은 드디어 비참한 인생이 끝나 평화를 누리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대요. 제인은 눈이 가려졌을 때 처형대를 못 찾아 당황한 것 말고는 마지막 기도를 마치고 의연하게 죽음을 맞았는데, 그 자리에 참석했던 메리 1세가 보낸 신하들조차 그녀를 동정했다고 하네요. 제인은 신교를 버리고 구교를 택하라는 메리 1세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순교로 보는 견해가 있어요. 유독 이 그림에 시선이 머문 것도 처연함이 주는 여운인 것 같아요. 화무십일홍, 이것은 비단 꽃이 진 아쉬움만은 아닐 거예요.
이 책에서는 튜더가, 스튜어트가, 하노버가의 역사를 다루고 있어요. 사진기가 없던 시절에 화가들이 그린 작품들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예술품이지만 역사적 자료로서도 의미가 있네요. 영국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에서는 한스 홀바인, 안토니스 모르, 아이작 올리버, 존 길버트, 존 마이클 라이트, 윌리엄 호가스, 윌리엄 비치, 윌리엄 터너, 프란츠 빈터할터, 존 레이버리가 남긴 명화를 만날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