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하는 나날들 - 조현병에 맞서 마음의 현을 맞추는 어느 소설가의 기록
에즈메이 웨이준 왕 지음, 이유진 옮김 / 북트리거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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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름이 붙여진 것들은 어쩔 수 없이 고정관념에 붙잡힐 때가 있어요.

조현병이라는 용어는 2011년에 정신분열병이란 병명이 바뀐 것인데, 분열이라는 단어가 주는 절망감과 성격이나 인격이 분열되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 때문에 환자 가족들이 병명 개정을 위한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새 명칭이라고 해요. 정신분열병은 Schizophrenia를 그대로 해석해 한자로 번역한 일본명칭을 사용했던 것인데, 일본도 2002년 통합실조증으로 명칭을 바꾼 뒤 치료효율성과 환자인권신장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우리에겐 실조증이란 단어도 썩 좋은 느낌은 아니라서 병명에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를 넣지 않고 질병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병명을 찾다가 국어국문학자의 결정적인 아이디어가 채택된 거래요. 조현이란 현악기의 줄을 고르는 것으로, 신경계나 정신의 튜닝이 잘 안된 상태라는 느낌을 전달하려는 의도를 담았는데, 분열이나 실조처럼 돌이키기 어려운 파국적인 상황이 아닌 다시 튜닝하면 된다는 치료의 희망을 내표한 명칭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새롭게 명칭을 바꾼 의미가 퇴색될 정도로 언론에서 조현병 환자를 비롯한 정신장애인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가며 차별과 편견을 조장하고 있어요. 한국 언론은 책임감을 갖고 스스로 자정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한 대중들도 무분별한 정보를 가려낼 줄 아는 현명함이 필요해요. 정신질환은 고혈압, 당뇨병과 같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병이므로 예방이 중요하고 치료가 가능하다는 관점을 가져야 해요. 무지와 무관심을 핑계로 외면하거나 비난하는 건 비겁하고 비열한 짓이니까요. 올바른 지식이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어요. 서론이 길었는데,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조현병에 관한 잘못된 인식을 조현할 수 있는 책이 나왔다는 거예요.

《조율하는 나날들》은 조현병에 맞서 마음의 현을 맞추는 어느 소설가의 기록을 담은 책이에요.

저자 에즈메이 웨이준 왕은 2세대 대만계 미국인으로 태어났고, 예일대에 입학했으나 정신질환을 이유로 퇴학 당했는데 이후 스탠퍼드대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 뇌 영상 연구원으로 일했다고 해요. 미시간대에서 순수예술 석사학위를 받고 현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소설을 쓰며 살고 있어요. 저자의 첫 에세이인 이 책은 2016년 그레이프울프 프레스 논픽션상 수상작이며, <타임>, <NPR>, <시카고 트리뷴> 등 주요 매체 20여 곳에서 '2019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어요.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조현병에 관한 의료진의 기록이나 관찰자 입장이 아닌 당사자의 내밀한 이야기라는 점이에요. 조현병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타인이 조현병을 앓는 이들에 대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접근할 수 없다고 느낀다는 것인데, 저자는 어떻게 진단을 받게 되었고, 본인은 어떤 고통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들려주고 있어요. 마치 칠흑처럼 어두운 방에서 길을 잃은 심정으로 살아왔으며, 무감각한 발 아래에는 조금이라도 잘못 움직였다가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맞닥뜨릴 거라는 두려움으로 괴로웠다고 해요. 처음 환각을 경험하고 머리가 이상해졌다는 의심을 한지 8년 만에 공식적으로 조현정동장애 양극형 진단을 받았대요. 미국정신의학회에서 발간한 DSM-5 에서 조현병은 295.90 이고, 조현정동장애 양극형은 295.70(F25.0)인데 진단명은 당사자가 자신을 바라보는 태도뿐 아니라 타인이 그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고 해요. 조현정동장애는 흔하게 진단되는 병이 아니며 유병 기간에 근거하여 진단이 내려져야 하기 때문에 영원히 병을 달고 살 가능성이 높다는 걸 의미해요. 이 진단을 받고 심각한 육체적 증상(실신, 만성통증, 알레르기, 허약)을 경험했다니, 충격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어요. 그 무렵에 MTHFR 변이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통해 조현병 발병에 '약간 높은 확률'을 보인다는 정보를 얻었고, 정신증과 싸우며 세상을 일관되게 바라보기 위해 고군분투했다고 하네요. 이 책을 쓸 당시에는 수년간 환각을 경험하지 않은 상태여서, '내가 있는 곳을 지키며 조심조심 걷는 일' (296p)을 한다면서, '이렇게 스르르 빠져나가는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만 한다면, 나는 그것을 붙들어 둘 수 있는 방법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스스로에게 되뇐다.' (297p)라고 이야기하네요. 오롯이 혼자 견뎌야 하는 고통 속에서 두렵지만 한 걸음씩 나아가는 저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네요.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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