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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미술관 - 풍속화와 궁중기록화로 만나는 문화 절정기 조선의 특별한 순간들
탁현규 지음 / 블랙피쉬 / 2023년 2월
평점 :
아주 특별한 미술관으로부터 초대를 받았어요.
한국 고미술계 최고의 해설가로 알려진 탁현규님의 《조선 미술관》이에요.
저자는 먼저 미술관 초대의 목적을 밝히고 있어요. '한국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구하기 위해서.
이 책은 조선의 산천과 의식주를 사실대로 담았던 17-18세기 그림을 통해 '진짜 조선'을 만날 수 있어요. 조선 오백 년 역사 중에서 17-18세기는 문화 절정기에 그려진 풍속화와 기록화가 남아 있고, 쇠퇴해가는 조선 말과 일제시대에는 가난하고 암울한 생활상을 찍은 사진들이 있어요. 역사는 흥망성쇠의 연속이고, 조선의 역사도 다르지 않아요. 중요한 건 올바른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는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합니다."라는 발언은 명백한 식민사관을 드러내고 있어요. 일제가 한국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한 왜곡된 역사관은 현재 일본 극우사관이기도 해요. 근데 대한민국 영토에서 삼일절 기념행사에서 이러한 발언이 나왔다는 게 믿을 수 없어요. 대한민국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퉁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적혀 있어요.
2023년 3월, 《조선 미술관》의 초대는 우리 모두에게 굉장한 의미를 지녔다고 볼 수 있어요. 바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조선 문화의 절정기 작품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이 책의 구성은 미술관 전시실을 관람하는 방식과 동일해요.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는데, 1관은 궁궐 밖의 사생활을 담고 있고, 2관은 궁궐 안의 공공 행사 기록을 담고 있어요. 그동안 풍속화나 산수화는 김홍도, 신윤복, 정선과 같은 대표적인 조선 화가들 덕분에 익숙한 편이지만 궁궐의 모습을 담은 기록화를 자세히 감상하는 건 거의 처음인 것 같아요. 특히나 우리 미술에 관한 최고의 해설이 더해져서, 재미있고 유익한 관람을 할 수 있어요. 보통 미술 감상이라고 하면, 서양화 중에서 유명한 그림들을 떠올리곤 했는데, 조선 미술관을 둘러보면서 새롭게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어요.
김홍도의 <마상청앵 馬上聽鶯>에서는 선비가 말고삐를 잡아당겨 말을 멈춰 세우고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버드나무를 향하고 있어요. 선비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 버드나무 가지 위에 꾀꼬리가 있어요. 꾀꼬리가 처음 울면 여름이 온다고 하여 여름을 알리는 전령사로 사랑받았는데, 그 꾀꼬리 소리에 선비는 가던 길을 멈춘 거예요. 이 그림 위쪽에는 제화시(그림을 보고 느낀 것을 읊은 시)가 적혀 있는데, 그 시를 쓴 사람은 김홍도의 절친인 이인문이라고 하네요. 이인문이 김홍도 그림을 보고 읊은 제화시를 김홍도가 대신 썼다고 볼 수 있어요. 하나의 작품 속에 그림과 시가 어우러지고, 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 서로 함께 풍유를 즐기는 마음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종합예술작품인 것 같아요. 왠지 봄날 강가의 버드나무 길에서 꾀꼬리 소리가 들려오는 듯, 그림 속에는 주변 풍경이 생략되어 있지만 눈에 보일 것만 같아요. 왜 길 뒤가 완전히 비워져 있느냐는, 시구에 '안개비'와 '봄 강'으로 추측할 수 있어요. 봄 강에 안개비가 내리니, 말 탄 선비는 오롯이 꾀꼬리에 집중하는 장면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거죠.
궁궐화는 알고 봐야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영조 임금이 승정전에 나아가서 백관을 거느린 왕세자의 하례를 받고 반교문을 내렸고, 이어 기로신(70세 이상의 정2품 이상 문신)들한테 축하 문서를 받았는데, 이를 그린 것이 <숭정전진하전도>예요. 이는 숙종 때 《기해기사첩》 속 그림 제목과 같고 그림도 거의 같은데, 딱 하나만 달라졌어요. 바로 승정전 뜰 박석의 크기예요. 영조대 갑자년(1744년) 그림 속 숭정전 뜰 박석 크기가 숙종대 기해년(1719년) 그림 속 박석 크기보다 작아진 이유는 뭘까요. 실제 숭정전 뜰 박석 모습은 갑자년 그림에 더 가까운데, 이는 숙종대인 기해년 화원들이 보기 좋게 꾸민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박석을 크게 그리는 것이 훨씬 보기 좋고 그림 속 인물들도 눈에 잘 들어오기 때문이죠. 세부 표현을 보면 영조대인 갑자년 화첩이 많이 후퇴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은 화원들의 솜씨만의 문제가 아니고 숙종과 영조 시대 전반의 문화 수준 차이일 수 있어요. 현재 국가 행사를 보더라도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어요.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알고, 문화를 이해하는 힘은 저절로 생기지 않아요. 조선 미술관은 훌륭한 우리 작품들을 통해 뛰어난 조선의 얼,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네요. 아무리 일본이 조선의 역사를 뿌리부터 왜곡해도 우리는 당당하게 맞설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