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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자들이 떠도는 곳
에이미 하먼 지음, 김진희 옮김 / 미래지향 / 2023년 2월
평점 :
잠시만요, 이야기를 들어주실래요?
낯설고 먼 나라의 얘기지만 진심어린 공감과 뜨거운 감동의 서사를, 혼자만 누리긴 아쉬워서 그래요. 좋은 건 나누고 싶으니까요.
마른 땅에 먼지를 폴폴 내며 나아가는 마차 행렬, 첫 장면에서 멈칫했는데 계속 읽어갈수록 도저히 멈출 수 없는 지경이 되었어요. 이야기에 푹 빠지기까지는, 물론 주인공 나오미와 존이 첫눈에 반하는 시간보다는 좀 더 걸렸다는 걸 고백해야겠네요.
1853년 5월, 미주리 주 세인트조지프에서 존은 노란 드레스에 하얀 보닛을 쓴 나오미의 모습을 봤어요. 그녀는 넓은 도로 한복판에 있는 볼록한 나무 물통에 걸터앉아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어요. 다들 바삐 움직이는데 그녀 혼자만 가만히 있어서였을까요. 존은 멈춰 서서 그녀를 바라봤고, 곧 그녀와 눈이 마주쳤어요. 근데 그녀는 눈을 피하지 않은 채 빤히 쳐다봤고, 존이 계속 눈을 맞추고 있자 놀란 듯 싶더니 이내 방긋 웃었어요. 반기는 미소에 당황한 존은 눈을 돌려 버렸어요. 강렬한 운명의 끌림이었을까요. 존과 나오미의 첫 만남에 몽글몽글, 심장을 떨렸어요. 나오미는 존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하며 손을 내밀기까지 했지만 존은 모자를 살짝 들어올리는 인사를 하며 철벽을 쳤어요. 왜 그랬냐고요? 그건 존에 관한 설명이 필요해요. 존 라우리는 백인 아버지와 인디언 포니 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데, 외모는 인디언쪽에 가까워요. 그래서 종종 무례하게 욕하며 경멸을 드러내는 백인들에게 수모를 당했기 때문에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 거예요. 어머니 부족의 원주민들은 존을 '핏쿠 아쑤 (두 발)'라고 불렀는데, 한쪽 발은 백인의 발, 다른쪽 발은 포니 족의 발이라는, 즉 두 세계 모두에 걸쳐 있다는 뜻이지만 존은 양쪽 세계 모두에게 낯선 사람, 이방인 취급을 당하고 있어요. 혼혈인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과 고통일 거예요. 암튼 노새업을 하는 아버지와 같이 일하는 존은 노새를 공급하러 이주민 마차 행렬과 함께 커니 요새를 가곤 했는데 이번엔 달랐어요. 첫눈에 반한 초록빛 눈동자의 그녀, 나오미에게 이끌려(본인은 아니라고 부정하지만) 동행하게 됐어요. 나오미는 부모님과 오빠, 네 명의 남동생 그리고 죽은 남편의 식구들과 캘리포니아로 이주하게 됐어요. 결혼한 지 석 달만에 세상을 떠난 남편, 스무 살에 과부가 된 나오미에게 서부는 새로운 희망이었을 거예요.
《길 잃은 자들이 떠도는 곳》 은 혼혈인 존과 과부 나오미를 통해 엄청난 대서사를 보여주고 있어요. 단순히 로맨스라고 표현하기엔 더 크고 위대한 지혜를 담고 있어서 읽는 내내 가슴이 벅차올랐어요. 이 소설에서는 위대한 여성들을 만날 수 있어요. 나오미의 엄마 위니프레드, 존의 백인 엄마 제니, 쇼쇼니 족 추장의 어머니인 '길 잃은 여인' 그리고 용감한 나오미까지, 그들 덕분에 시련을 견뎌내는 힘이 무엇인지를 배웠어요. 서부개척시대가 아니더라도 현재의 삶에서 길 잃은 사람들에겐 위로와 용기가 필요해요. 끔찍한 참사로 희생된 사람들과 유가족들...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눈 위에 발자국이 남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