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잠든 계절
진설라 지음 / 델피노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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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는 순간 3초.

서로 눈이 마주치고 심장이 쿵쿵대며 울리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아요.

요즘 방송에는 남녀간의 사랑을 다루는 '러브 버라이어티'가 인기를 끌고 있어요. 배우의 연기 대신 일반인이 보여주는 진짜 감정이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매력인 것 같아요. 특별한 공간에서 낯선 이성을 만난다면 어떤 감정이 생기는지, 아바타처럼 그들을 통해 두근거리는 설렘이 생성되는 거예요. 아마도 그 감정을 느껴보고 싶은 욕구가 인간의 본능인 것 같아요.

《기억이 잠든 계절》은 진설라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처음엔 달달한 로맨스 소설인 줄 알았어요. 어느 여름날 인적이 드문 바닷가, 밀물시간에 고립된 남녀가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해 등대 처마 아래서 키스를 하는 장면은 완전 드라마였어요. 연인이나 친구 사이가 아닌 난생처음 본 타인이지만 젊고 아름다운 두 사람이기에 가능한, 거의 비현실적인 장면인데 거기서 끝, 마치 꿈처럼 묘사하고 있어요. 그 다음 장면은 일일연속극이나 막장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상황들이 펼쳐지거든요. 익숙한 일상 같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부부 관계가 놀라워서, 그와는 상반된 낭만적인 키스신을 더욱 아련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키스 한 번으로, 첫사랑의 감정을 끌어낼 수 있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주인공의 경우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어요.

"나는 널 내 우주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했어. 그렇게 넌 나의 우주가, 다신 없을 첫사랑이 되었어." (6p) 라고 고백하는 듯한 문장이 소설 맨 처음에 등장하는데, 여기서 '나'와 '너' 그리고 첫사랑을 제멋대로 상상했다간 큰코 다칠 수 있어요. 그만큼 충격적인 전개, 놀라운 비밀 혹은 반전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어쩌면 알아도 모르는 척, 내색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로맨스 스릴러, 달콤쌉싸름한 이야기였네요. 그건 '러브 버라이어티'를 볼 때의 감정과 비슷했어요. 그들의 감정은 분명 내 것은 아니지만 내 것처럼 느껴지는, 약간의 마비 상태랄까요. 암튼 불쾌한 것들은 싹둑싹둑 잘라버린 뒤 원하는 것만 남겨둔다면, 사랑에 빠진 순간의 감정일 것 같아요. 그리고 "사진에 담고 싶은 그 어느 산길 풍경처럼 발걸음을 멈추고 싶은 얼굴"(15p)일 것 같아요. 신기하게도 《기억이 잠든 계절》 덕분에 그 감정이 깨어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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