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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우샤오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0월
평점 :
"인간은 어째서 이토록 모순적일까?
... 비밀이란 그런 것이다. 비밀의 존재를 숨기고 없는 척할수록
그 비밀이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다." (111p)
《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는 대만의 소설가이자 사회평론가인 우샤오러의 장편소설이에요. 변호사인 판옌중은 재벌가의 막내딸 옌아이써와 결혼해 딸 쑹뤼를 낳았지만 씀씀이가 큰 아내와 잦은 다툼 끝에 이혼했어요. 그 뒤 학원 강사로 일하는 차분한 성격의 우신핑과 재혼했어요. 판옌중이 우신핑에게 끌린 이유는 은둔자 같은 성격 때문이었어요. 연애 시절 그녀는 부모님은 다 돌아가셨고 유일한 오빠는 몇 년 전에 연락이 끊겼다고, 친구도 거의 없다고 말했어요.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우신핑의 요구는 판옌중도 원하던 바였어요. 자식은 딸 쑹뤼 하나면 충분하니까. 우신핑은 쑹뤼에게 다정했고, 판옌중과도 별다른 문제 없이 잘 지냈어요. 하지만 사소한 다툼이 있었고, 그 다음날 아내를 데리러 학원에 갔다가 우신핑이 휴가를 낸 사실을 알게 됐어요. 아내는 깜쪽같이 사라졌어요. 도대체 왜?
판옌중은 아내를 찾으러 다니면서 감춰진 과거, 그녀의 비밀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는데...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우신핑의 직장 동료인 젠만팅이에요. 평소 사람들과 거리를 두는 우신핑에 대해 호기심을 품고 있던 젠만팅은 남편 판옌중의 등장과 함께 우신핑의 비밀을 캐내며 희열을 느끼고 있어요. 질투심에서 비롯된 악의적인 관심을 호의로 포장하는 게 역겨웠어요. 대부분의 비밀이란 숨기고 싶은 과거일 텐데, 집요하게 남의 비밀을 들춰내려는 사람들의 속성은 잔혹함인 것 같아요.
애초부터 비밀은 없었어요. 아무리 감춘다고 해도 한 사람의 과거를 송두리째 없애버릴 수는 없으니까요. 너무나 끔찍하고 괴로워서 지우고 싶은 과거라면 누구라도 침묵할 거예요. 말하지 않을 권리, 그걸 거짓말이라고 매도한다면 어쩔 수 없어요. 친구, 연인, 부부, 가족... 가까운 사이라도 늘 틈은 존재해요. 서로 모르는 영역, 그 틈을 메우려는 건 매우 어리석은 짓이 아닐까 싶어요. 인간 내면 깊은 곳에 숨겨진 악의 심연, 그걸 마주하는 일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지만 결코 외면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비극은 악마의 짓이 아니라 선한 얼굴을 한 인간의 악행에서 비롯되니까요. 범죄자의 얼굴이 공개될 때마다 흠칫 놀라는 이유는 너무 평범하기 때문이에요. 차라리 무시무시한 괴물의 모습이었더라면 덜 무서웠을 거예요.
판옌중은 딸 쑹뤼에게 약속을 잘 지켰다면 머리를 쓰다듬으며 착하다고 말해줬어요. 그러자 쑹뤼가 물었어요. "그럼 아빠도 착해?" (158p)
당황스러운 질문이지만 판옌중은 얼른 대답했어요. 아빠도 당연히 착하다고, 아마 아빠라는 존재로서는 착할 수 있겠지만 변호사로서, 남편으로서, 아들로서 착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착함이란 늘 조건이 붙는다는 걸, 과연 누구를 위해 착해야 하는 건지 묻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