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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문장들
강처중 외 지음, 윤작가 엮음 / 우시모북스 / 2022년 11월
평점 :
좋은 책이란, 좋은 문장으로 기억되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눈에 담고 싶고, 사진으로 남기고 싶듯이 책을 읽다가 마주하는 명문장들은 밑줄을 긋거나 노트에 옮겨적게 돼요.
예전에는 문장수집을 위한 노트가 따로 있었는데, 요즘은 제대로 저장해두질 못했던 것 같아요. 머릿속에 오래 저장해둘 수 있으면 좋으련만.
《불멸의 문장들》은 문장수집가이자 팟캐스터 윤작가님의 책이에요.
이 책은 저자가 떠올린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되었다고 해요. 한국현대문학사에 명예의 전당이 생긴다면 누가 오를 것인가.
문장수집가인 저자는 활자 탐독 여행을 하면서 혼자 읽고 두기 아까워, 인터넷 라디오 팟빵 「북적북적톡설」 에서 읽어주었던, 같이 읽고 싶었던 우리 시대의 명문장들을 모아 한 권의 책을 완성했다고 하네요.
1898년부터 1956년까지, 마흔여덟 명 작가의 보석 같은 산문들 마흔여덟 편을 골라 여섯 개의 주제로 나누어 [원문에서 살려낸 문장]으로 복원했고, 원문 출전 연도를 [평설] 머리에 밝혀두었어요. 선정한 작품에 대한 평설은 문장 선택에 대한 이유뿐 아니라 작품 이해를 돕는다는 점에서 친절한 해설자 노릇을 하고 있어요. 여기에 소개된 작가들은 우리 현대사, 고난의 역사 속 광야를 헤쳐나간 선구자들이라고 볼 수 있어요.
PART 1> 시처럼 아름다운 산문에는 방정환, 나도향, 김소월, 최서해, 민태원, 노자영, 심훈, 김진섭, 이상, 김교신, 이선희, 정지용, 윤동주, 오장환, 현덕, 계용묵, 김동석, 정인보, PART 2> 느낌은 그리움처럼, 아무튼 산문에는 이상재, 권덕규, 신채호, 윤백남, 윤심덕, 송계월, 고유섭, 이육사, 문일평, 석주명, 김남천, 이태준, 김구, 김규식, PART 3> 길 위의 인생, 여행자의 기록에는 나혜석, 백신애, 한용운, 김사랑, 박인환, PART 4> 우리말 사랑에는 주시경, 이윤재, 문세영, 정태진, PART 5> 문단 이면사에는 김우진, 현진건, 강처중, PART 6> 예술가의 첫사랑에는 안창호, 백석, 임화, 변영로의 우리 시대 불멸의 문장들을 만날 수 있어요. 단순히 좋은 문장의 개념을 뛰어넘는 시대정신과 민족의 얼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뭉클한 감동이 있어요. 이 분들은 각각 한 권의 책으로 소개해도 부족하지만 명예의 전당에 오를 작가님으로 상상해보니 《불멸의 문장들》이라는 책이 더욱 빛나보였어요. 어둡고 거친 광야에서 모진 고통에 굴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고 스러져간 별들과 그들의 불멸의 문장은 오래오래 기억될 거예요. 반면 친일파로 변절한 작가들은 여기, 윤작가의 《불멸의 문장들》 명예의 전당에 결코 들어올 수 없어요. 해방 이후 지속된 이념갈등은 친일파 청산을 덮어버리는 도구로 악용되면서 21세기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흔들어대고 있어요. 여러모로 혼란스럽고 답답한 이 시기에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드는 문장, 그건 바로 김구 선생님의 『백범일지』에 나오네요. 학창 시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애국심이 끓어올랐더랬죠. 김구 선생님의 자서전 『백범일지』 판본은 1929년과 1949년에 탈고한 친필본과 그것을 옮겨적은 필사본 2종, 1947년 공식적으로 출간된 국사원 본까지라고 해요. 국사원 본은 이광수가 손질한 1947년 책인데, 1994년 백범의 아들 김신이 친필 원본을 공개함으로써 이광수의 윤문과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게 됐어요. 여기 소개된 문장의 출전은 1947년 12월 15일 국사원에서 처음으로, 아들 김신에 의해 초간 발행된 백범일지라고 해요. 김구 선생님의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는 현재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알려주네요.
"최고 문화로 인류의 모범이 되기로 사명을 삼는 우리 민족의 각원은
이기적 개인주의자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 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 (261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