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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이 있어 - 은모든 짧은 소설집
은모든 지음 / 열린책들 / 2022년 12월
평점 :
시간의 문이 존재한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한 적이 있어요.
초능력자들이 등장하는 드라마에서 언제 어디서든 문만 열만 원하는 시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걸 본 뒤로 쭉 생각했던 것 같아요. 현실에선 불가능하니까 그냥 꿈을 빌어 상상만 해왔어요. 거품처럼 사라질 꿈이지만 찰나의 해방감이 있더라고요.
《선물이 있어》는 은모든 작가님의 짧은 소설집이에요.
일단 책표지가 인터넷서점과 달라요. 동네책방 에디션이래요. 산뜻한 노란 표지 대신 채도가 낮은 민트색 바탕에 반짝임과 빨간 선물 상자가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해서 전혀 다른 책 같아요. 어쩐지 책표지처럼 소설 내용도 사람마다 상반된 반응을 보일 것 같아요. 짧은 이야기들은 각각 개별적인 에피소드로 읽어도 무방하지만 읽다보면 등장인물끼리 은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돼요.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고 있지만 한 가지 놀라운 장치가 숨어 있어요. 바로 시간의 문, 우리가 짐작할 만한 역사적 인물인 허 씨가 나와서 반가웠는데 너무 짧게 스쳐가서 아쉬웠어요. 특이했던 건 작가 본인을 등장시켰다는 점이에요. 소설가 은모든을 인터뷰 하러 온 두 사람과의 에피소드를 통해 결말 닫는 사람들을 알아보고 경계하는 방법을 알려주네요. 매우 깍듯하게 상대의 잠재력을 깎아내리는 사람들은 무조건 상종을 하지 말아야 해요.
은모든 작가님의 소설집을 두 권 읽어보니, 뭔가 밀크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만식, 홍콩식, 태국식 밀크티 맛은 모르겠고 제가 처음 맛본 밀크티는 잔잔하게 감싸는 느낌이라 딱 취향 저격이었거든요. 아마 저마다 읽으면서 각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을 것 같네요. 이를테면 옥색 같은, 옥이라고 하면 옥가락지, 옥팔찌를 연상시켜서 올드한 느낌을 주지만 파스타치오 아몬드 아이스크림의 색이랑 비슷해요. 표현만 다를 뿐이지 색은 동일하다는 거예요. 실제로 우리 눈앞에 시간의 문이 열리게 만들 순 없지만 여러 인물들을 통해 시간의 문과 관련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될 거예요. 지금 행복한가요. 바꿀 수 없는 과거에 연연하거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애쓰지 말고, 현재를 바라볼 것.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으면 돼요. 행복하냐고,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다행이고 만약 아니라면 행복해질 일만 남은 거예요. 힘들고 괴롭다면 불행하다고 단정지을 게 아니라 이제 행복해질 차례라고 말하면 돼요.
「이모도 결국 문을 안 열었다고 하지 않았어? 그럼 성공한 농담 같은데.」
선미는 씩 웃으며 인정의 어깨를 짚고는 바로 그거라고 말했다.
인정이 고개를 갸웃하자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것 봐.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보기에 따라 그렇게 얼마든지 달라지는 거라고.
그러니까 더욱이, 뭐든 미리 겁낼 필요도 없다고. 알겠지?」 (81p)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