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라고도 넘치는 고요 - 그림의 길을 따라가는 마음의 길
장요세파 지음, 김호석 그림 / 파람북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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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을 살고 싶냐고 묻는다면 생각이 많아져요.

머릿속에서는 원하는 것들의 목록이 차르륵 펼쳐지니 말이죠.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뚜렷한 하나가 생겼어요. 그건 잠자리에 들 때 평온하게 푹 잠드는 삶이라고요.

걱정, 근심이 많으면 쉽게 잠들 수 없고, 스스로 부끄러운 짓을 저질렀다면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뜬 눈으로 샐 수밖에 없어요.

《모자라고도 넘치는 고요》 는 장요세파 수녀님의 글과 김호석 화백의 수묵화가 함께 어우러진 묵상집이에요.

이 책은 김호석 화백의 작품을 바라보며 기도하듯 묵상하는 장요세파 수녀님의 글이 담겨져 있어요. 무엇을 바라보느냐,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떤 마음으로 보고 있느냐인 것 같아요. 저도 모르게 그림을 한참 바라보다가 잊고 있던 것들이 떠올라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었어요.

「손으로 하늘을 가리다」 라는 그림을 보면 새하얀 천을 빨랫줄에 걸고 있는 두 사람의 손과 빨래집게가 있어요. 천이라고 생각했던 건 한지였나봐요. 한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풀이 필요하대요. 10년을 썩힌 풀, 녹말에 물을 부어 썩으면 윗물을 따르고 또 따라내면 영양분은 다 배출되고, 종이에 풀을 쑤어 발라도 종이가 부패하지 않는 풀이 되는데, 그 풀을 바른 한지를 한 장 한 장 널어 말리는 장면이래요. 저 과정만 네 번을 한다고 하니 정성과 노력이 요구되는 작업이에요. 화백은 일제 강점기 때 사라져버린 한지를 재현해내기 위해 전국을 다니는 발품, 과거 기법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오랜 시간, 거기에 20억에 가까운 돈을 들였다고 해요. 방방곡곡을 헤맨 끝에 닥나무를 찾았고, 화실 옆 밭을 일구어 직접 심고 교잡해 얻은 나무로 직접 한지를 만들었대요. 그것이 현재의 한지용 닥나무인데, 그렇게 키운 닥나무를 농부들에게 나눠줘 키우게 하고, 키운 닥나무를 한지 장인들에게 무상 공급하고 기술까지 전수해줬다고 해요. 사라진 우리의 한지가 오직 한 사람의 손에 의해 재탄생했다니, 참으로 놀라웠어요. 화백은 한지 제조 특허권 있는데, 특허권을 돈으로 교환하지 않고 원하는 이들에게 무상으로 그 기술을 나누어주고 있어요. 종이 장인들이 화백의 기술로 만든 종이를 화백은 다시 일반 한지보다 수십 배 넘는 비싼 가격으로 사서 그림을 그린다고 해요. 아무도 모르는 화백의 눈물겨운 희생과 봉헌을, 장요세파 수녀님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대요. 탐욕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자신이 가진 걸 기꺼이 내놓는 사람이 존재했다니, 굉장한 감동을 주네요. 그동안 각박한 세상 탓을 하면서도 저 역시 이기적인 인간이었다는 걸, 새삼 염치가 스멀스멀 올라왔네요. 그래서 수많은 그림들 가운데 「얽히고설켜도 정겨운 햇살」 이라는 그림이 마음 한 켠을 뜨겁게 달구었네요. 닥종이를 말리는 여러 사람의 손들이 바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희망이 보여요. 끊어질 뻔 했던 조상의 숨결을 홀로 고군분투하며 명백을 이은 화백의 숨결이 종이에 깃들여진 듯, 그림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알고 나니 깊은 감동이 강렬한 힘을 전해주네요. 세상이 아름다운 건 아름다운 사람들 덕분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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