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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도 긴 여행
배지인 지음 / 델피노 / 2022년 12월
평점 :
《짧고도 긴 여행》 은 배지인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주인공 유민은 군인 아버지의 근무지 백령도에서 태어난 섬 아이예요. 북한의 김일성 사망 소식으로 군인 가족들이 벙커에서 지낸 지 사흘째 되는 밤, 유민의 엄마에게 진통이 찾아왔고, 시내 병원으로 옮겨져 11시간만에 출산했다고 하니, 유민은 1994년 7월생이네요. 유민은 백령도에 몇 안 되는 군인 가족 아이이자 유일한 친구인 지호와 함께 매일 놀았는데, 흡사 군인들의 비밀 작전 같았어요. 어른들의 눈을 피해서 비밀통로를 만들었는데, 그 길을 따라가면 아무도 모르게 동산을 한 바퀴 돌아 나올 수 있었고, 이 길을 "짧고도 긴 여행"이라고 명명했어요. 둘만의 비밀통로 "짧고도 긴 여행"은 남들의 눈을 피해 노는 비밀 아지트였지만 훌쩍 커버린 뒤에는 더 이상 짧고도 긴 여행으로 들어가지 않게 되었어요.
중학교 진학을 위해 유민이네는 겨울방학 때 육지로 나갈 계획이었어요. 그러나 한 통의 전화로 모든 게 달라졌어요. 해군 함선의 침몰, 유민의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어요. 엄마는 배에서 자식 또는 남편을 잃은 다른 여자들처럼 슬픔을 표현할 수 없었어요. 함장의 아내였기에 희생된 장병의 가족들이 퍼부어대는 모진 말과 폭력을 감내했던 거예요. 백령도 근처에서 벌어진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데, 소설은 실제 사건과는 별개로 군인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어요. 단단한 둑이 무너지듯, 아빠의 죽음과 함께 시련은 연이어 찾아왔어요.
평범하게 앞을 보며 걷다가 그냥 넘어졌을 뿐인데, 왼쪽 무릎이 분리되는 듯한 고통으로 정신을 잃은 후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병원에 깁스를 하고 누워 있는 유민의 모습은 그녀의 인생을 예견하는 결정적인 장면처럼 느껴졌어요. 겨우 열다섯 살 소녀에게 엎친 데 덮친 불행, 견디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유민은 씩씩했어요. "인생의 비극에도 실버라이닝은 있는 법이다." (65p)
유민은 불행 중 한 가닥 희망을 찾아내는 데 꽤 재능이 있는 편이었고, 이후의 삶에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어요. 아픈 몸을 바꿀 수도 없고, 다시 태어날 수도 없으니 유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였던 거예요. 삶을 긍정할 것. 사실 살면서 크고 작은 시련을 겪지 않은 이는 없을 거예요. 중요한 건 굴하지 않는 것, 꿋꿋하게 살아내는 것이겠지요. 유민의 인생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면면들을 마주하게 될 거예요. 유민은 소설 속 주인공인 동시에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이기도 해요. 유민이 매료됐던 인물인 프리다 칼로는 마흔일곱 살의 나이로 죽기 일주일 전 그린 마지막 그림에서 새빨갛게 속이 차오른 수박에 " viva la vida 인생이여, 만세! "라고 그려 넣었대요. 유민은 회사를 그만두면서 프리다 칼로를 떠올렸고, 앞으로 딱 30년간 행복하게 살다 죽을 수 있는 행복한 일을 찾겠다고 결심하는데, 이 장면이 가장 멋진 것 같아요. 짧고도 긴 여행, 우리는 각자의 여행을 하고 있네요. 기왕이면 멋지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