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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그들의 정치 -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제이슨 스탠리 지음, 김정훈 옮김 / 솔출판사 / 2022년 12월
평점 :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24년 대선 출마를 공식 발표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헛웃음이 나왔어요.
미국 사회는 트럼프 후유증을 앓고 있어요. 바이든 정부는 조직적인 차별과 백인 우월주의가 오랜 세월 미국을 괴롭힌 추악한 폐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트럼프 지우기를 해왔지만 여전히 인종간 갈등은 해소되지 않고 있어요. 그 와중에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다음 대선을 노리면서 인종차별주의자들과의 만찬을 하고 있으니, 21세기 히틀러가 아닌가 싶어요. 비단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라서 씁쓸하네요.
도통 정치에 관심이 없었는데, 2022년은 따끔한 정치 수업을 받는 한 해였던 것 같아요. 정치는 우리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엎어지고 나서야 뼈저리게 깨닫는 중이네요. 이 책은 지금 우리의 정치를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돋보기 같아요.
저자인 제이슨 스탠리는 미국 예일대학 철학과 교수이자 미국의 대표적인 사회철학자라고 해요. 《우리와 그들의 정치》 는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파시즘적인 요소가 어떻게 독버섯처럼 퍼져나가는지를 밝혀낸 책이에요. 제이슨 스탠리는 권위주의적 지도자의 인격이 국가를 대표하는 여러 종류(민족, 종교, 문화)의 초국가주의를 가리키는 말로 '파시즘'이라는 명칭을 선택했고, 그 단적인 예로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7월 공화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나는 당신들의 목소리다." (15p)라고 선언한 것을 언급했어요. 권력을 얻기 위한 메커니즘으로서의 파시스트 전술을 쓰는 사람이 권력을 잡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책을 읽는 내내 소름이 돋았네요. 파시스트 정치는 사람들을 우리와 그들로 분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많은 종류의 정치운동들이 분열을 일으킨다고 해요. 우리는 근면하며 노력과 능력으로 자랑스러운 지위를 얻었는데 그들은 게으르며, 우리 복지제도의 관대함에 편승하여 우리가 생산한 물건으로 생존해가거나, 노조와 같은 부패한 기관을 고용하여 정직하고 근면한 시민들의 급여를 뜯어간다는 거예요. 며칠 전 국무회의에서 "지난 5년간 보장성 강화에 20조원 넘게 쏟아부었지만 정부가 의료 남용과 건강보험 무임승차를 방치했다"면서 건강보험 정책에서 보장성 강화 정책은 국민혈세를 낭비하는 인기영합적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맹비난을 퍼부었어요. 사회 약자를 위한 건강보험이 아깝다는 뜻인 거죠. 노동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면서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사태에 대해서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몰아부치고, 노동시장 개혁이라면서 국민의 노동시간만 늘려놓는 정책이라니,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고 싶네요. 자유가 없는 자유를 외치더니, 국민을 뺀 국가 정책도 같은 맥락이네요. 많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정책을 내놓고 추진하기란 어려운 일인데, 우리나라는 너무 쉽게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충격적이네요.
정치 프로파간다의 핵심은 그럴 듯한 속임수인데,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범죄와의 전쟁'이 문제가 있는 목표를 고결한 목표로 가린 좋은 예라고 소개하고 있어요. 정말 놀랍네요. 당선 즉시 흉악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겠다던 대통령이 지난 달 마약과의 전쟁을 거듭 강조했었죠. 공교롭다고 해야 하나요. 그 다음엔 참사가 벌어졌으니... 파시스트 정치인에게 부패란 사실 법의 부패라기 보다는 순결의 부패라고 하네요. 그들이 부패를 들먹이는 의도는 전통적 질서가 훼손되었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거예요. 반부패라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견제할 수도 있는 기관들과 세력을 공격하는 거죠. 반민주적인 정권이 권력을 잡으면 독립적인 법관들을 정당 충성파로 대체하는 법률이 도입되는데, 최근 헝가리와 폴란드가 비민주적인 통치로 빠르게 이행되고 있다고 하네요. 또한 파시스트 정치인들은 진보 매체가 우익 음모론의 논의를 검열한다며 진보 매체를 깎아내리는데, 자유민주주의 제도가 실제로는 거짓된 행동을 감추고 있는 허울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그들이야말로 음모론자들이에요.
저자는 2018년 트럼프 임기 중에 이 책을 출간했는데, 철학자가 정치에 대한 대중서를 낸다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지만 트럼프 시대라서 가능했고, 뜻밖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네요. 우리는 왜 진작에 이 책을 읽지 않았는가를 반성해야 될 것 같아요. 소돔과 고모라, 그 재앙의 경고가 오늘에서야 더욱 뚜렷하게 보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