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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지구 - 당신의 눈앞에서 펼쳐지는 가장 작은 종말들
데이브 굴슨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2년 11월
평점 :
지금껏 살면서 곤충을 좋아하는 사람은 파브르 외에는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집파리, 모기, 바퀴벌레는 발견 즉시 없애는 걸 당연한 듯 살아왔고, 다른 곤충들은 거의 관심을 두질 않았으니까요.
유일하게 꿀벌에 대한 관심은 "꿀벌이 멸종하면 인류도 4년 안에 사라진다"는 섬뜩한 경고문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아인슈타인이 말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무근이고, 정확한 출처는 알려진 바가 없어요. 꿀벌의 멸종이 인류의 멸종일 리는 없겠지만 꿀벌의 개체 감소가 농작물 생산량에 영향을 주는 건 확실해보여요. 올해 봄, 꿀벌 집단 실종 사건이 크게 보도된 적이 있는데 그 원인을 찾아보니 살충제, 질병, 기생충 그리고 지구 온난화로 인한 나쁜 날씨 때문이었대요. 그렇다면 꿀벌만 사라지고 있는 걸까요.
《침묵의 지구》 는 데이브 굴슨의 책이에요.
저자는 영국 서식스 대학교 생물학 교수이자 곤충학자예요. 그는 30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곤충들이 전 세계적으로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것을 과학적인 통계 자료를 통해 보여주고 있어요. 곤충의 감소는 이 작은 동물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슬픈 일이지만, 인류의 삶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예요. 인류의 식량인 작물을 수정시키고, 배설물과 낙엽과 사체를 재순환하게 만들고, 토질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해충을 방제하는 등의 온갖 일들에 곤충이 필요해요. 곤충이 적어질수록 우리 세상도 서서히 멈출 것이고, 곤충이 없다면 세상은 제 기능을 할 수 없을 거예요.
<침묵의 봄> 의 저자인 레이철 카슨은 "인류는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과의 전쟁은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과의 전쟁이다." (13p)라고 말했어요. 레이철 카슨 덕분에 미국은 1972년, 유럽은 1978년, 세계적으로는 2004년에 DDT 사용이 금지되었어요. 그러나 DDT 뒤를 잇는 새로운 농약이 등장해 그 유해성이 입증되기 전까지 마구 살포되고 있어요. 현재 사용되는 가장 악명 높은 살충제인 네오니코티노이드는 DDT의 7,000분의 1에 불과한 양으로도 꿀벌을 죽일 수 있어요. 2017년 EU 28개국 중 13개국에서 금지된 네오니코티노이드를 농민이 꽃피는 작물에 사용하도록 허용하는 유예 조치가 내려졌고, 2021년 1월 영국 정부는 환경 단체의 격렬한 항의에도 개의치 않고 사탕무에 네오니코티노이드를 쓸 수 있게 유예해줬어요.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살포되는 농약 중 하나인 살균제 클로로탈로닐은 1964년부터 사용되었고, 2018년까지 영국에서 가장 많이 쓰인 농약으로 벌꿀에 아주 흔히 들어 있어요. 처음 승인된 당시에는 벌에게 해로운 효과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지지 않아서 그후 50여 년이 흘렀고, 2019년 EU는 이 화학물질의 사용을 금지했어요. 벌에게 미치는 피해 때문이 아니라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게 주요한 이유였대요.
전 세계의 여러 연구자들은 벌이 모은 꿀과 꽃가루에서 온갖 농약을 발견했는데, 벌집의 위치와 상관없이 벌이 모은 먹잉에는 거의 예외 없이 살충제, 살균제, 제초제가 복잡하게 뒤섞여 있었대요. 살충제 83가지, 살균제 40가지, 제초제 27가지, 진딧물 제거제 10가지 등 벌의 먹이 창고에서는 100가지의 농약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경작지에 뿌려지는 농약이 해충만 겨냥했다고 순진하게 믿고 넘어갈 일은 아닌 거죠. 모든 위기는 연결되어 있어요.
2017년 가을, 저자는 곤충의 감소 문제를 두고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라디오 쇼 사회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그의 첫 질문은 이러했어요.
"그러니까 곤충이 사라지고 있다는 거죠? 좋은 일 아닌가요?" (31p)
곤충을 싫어하는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이 질문에 동의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을 읽는다면 경악스러운 무지의 발언임을 인정하게 될 거예요. 몰라도 괜찮은 건 아기들뿐이에요. 올바른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무지를 핑계로 대는 부끄러운 짓은 하지 말아야죠. 우리는 곤충이 우리의 생존에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그래야 곤충의 감소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체감할 것이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거예요. 저자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우리가 진정으로 노력한다면 기후 변화라는 거인을 멈출 수 있고, 생물다양성 상실을 중단시키고 더 나아가 다양성을 회복시킬 수도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마지막 장에 '모두를 위한 행동 조언'은 지금 당장 다함께 노력해야 할 것들이 정리되어 있어요. 어느 누구도 혼자서는 결코 할 수 없지만 함께한다면 할 수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