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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의 손길 ㅣ 페르세포네 × 하데스 3
스칼릿 세인트클레어 지음, 최현지 옮김 / 해냄 / 2022년 9월
평점 :
"신들이 널 파괴할 거야." 데메테르가 말했다.
"나라면 널 안전하게 지켜줬을 텐데!"
"온 세상이 위협받고 있는데 나만 안전한 게 무슨 소용이에요?"
"세상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그녀가 으르렁댔다.
그때 페르세포네는 처음으로 데메테르의 진정한 두려움을 보았다.
찰나의 순간 둘은 싸움을 멈추고 신경이 곤두선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데메테르의 입에서 나온 말은 페르세포네를 무너뜨렸다.
"네가 중요해. 넌 내 딸이잖아. 난 너에게 애원했어."
날 것의 진실이 담겨 있는 말이었다. 페르세포네는 어머니의 행동을 어느 정도는 이해했지만
결코 동의할 수는 없었다. 하데스 역시 그녀에게 애원했고, 그녀를 보호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는 시련이 그녀를 강하게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면, 그녀가 싸우도록,
고통을 받도록 놔두었다. (549p)
《악의의 손길》 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에요.
그리스 신화에 뿌리를 둔 에로틱 로맨스 판타지 소설이라서 다소 수위가 높은 장면들이 있지만 그러한 자극적인 요소보다 더 강렬한 본질은 페르세포네 자신인 것 같아요. 그녀의 엄마 데메테르는 딸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정체를 숨기도록 애썼는데, 결과적으로는 페르세포네의 존재를 부정하며 급기야 공격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신화에서 데메테르는 납치당한 딸을 찾아나서는 애절한 모성애를 지녔다면 소설에서는 사뭇 다르게 묘사되고 있어요. 현실에서는 종종 부모와 자녀 간에 불화와 갈등이 벌어지는데 안타까운 진실은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는 것, 그 사랑으로 구속하려 한다는 거예요. 사랑은 숭고하고 아름답지만 때로는 비뚤어진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해요. 당하는 입장에선 나쁜 사랑인 거죠. 그래서 데메테르의 분노는 사랑의 어두운 이면이 아닐까 싶어요. 가장 가까운 사이, 친밀한 관계에서 점점 틀어지고, 멀어져버린 데메테르와 페르세포네.
페르세포네는 사랑에 눈이 먼, 어리석은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가며 더욱 단단하게 성장하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멋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들의 싸움은 전혀 이해가 되질 않아요. 상징과 비유로써 현실에서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환하여 생각하면 갈등 구조는 단순해지는 것 같아요. 어찌됐든 스칼릿 세인트클레어 작가님의 독특한 상상력이 더해져서 색다른 신화 버전이 탄생한 것 같아요.
3권에서 대서사의 마지막을 볼 줄 알았는데, 네 번째 이야기 《혼돈의 손길》 은 미국에서 출간되었고, 그 뒤 이야기를 집필 중이라고 해서 놀랐어요. 설마, 장기적인 프로젝트는 아니겠지요.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독자는 괴롭다고요. 부디 빠른 시일 내에 출간되었으면 좋겠네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