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 종친회
고호 지음 / 델피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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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 종친회》 는 고호 작가님의 소설이에요.

제목부터 갸우뚱, 세상에 노비도 종친회가 있던가 싶었죠. 뭐, 확인할 순 없지만 다들 자기 집안은 양반 출신이라는 말은 해도 노비를 언급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거든요. 어찌된 상황인가 했더니 주인공 봉달은 사업 실패로 도주하던 중 고향 선산을 찾았다가 이차저차 사촌 형을 만난 뒤 서울로 돌아와 종친회를 설립한 거예요. 대외적으론 뿌리 찾기가 목적이지만 봉달의 속내는 돈이에요. 사업 때문에 떠안은 빚을 해결하려고 꼼수를 부린 거예요. 하필이면 같은 종씨를 모아 종친회로 사기를 친다는 게 몹시 괘씸하지만 쭉 지켜보다보면 신기한 일이 벌어져요.

현이 아니라 헌, 진주 헌 씨 종친회를 제발로 찾아온 첫 번째 인물은 헌신자, 40대 가정주부인 그녀는 거침없이 노비 집안임을 밝히면서 종친회가 생겼다는 사실에 반가움을 표현하네요. 봉달은 적극적인 그녀에게 실장이라는 직함을 주고, 신자는 열심히 회원 유치를 하는데, 그 뒤로 퇴직한 노교수 학문, 미국으로 입양되었던 청년 총각, 전직 깡패 현 횟집 사장님 금함, 무능한 아빠 대신 엄마의 성 씨로 바꾼 자매들... 신기하게도 이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뿌리 찾기에 열심이고, 봉달은 하루빨리 돈을 챙겨 도망갈 생각만 하는데... 인생이 늘 그렇듯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아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성과 함께 부르면 놀림받기 딱 좋은, 그야말로 우스꽝스러운 이름인 데다가 그들의 가문이 노비 집안이라는 설정은 대단한 풍자네요. 도무지 접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각기 다른 연령대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종친이라는 이유로 뭉치자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로 흘러가네요. 뿌리를 찾고자 하는 그들의 진심과 봉달의 흑심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야기, 그리고 놀라운 반전은 끝까지 읽는 맛이 있네요. 뜻밖의 진실이 밝혀지는데, 여기서 핵심은 우리 인생에서 뭣이 가장 중요한지를 아는 게 아닐까 싶네요.



"여기가 종친회 맞죠? 막 길가다보면 무슨 씨 무슨 파 사무실! 이래가지고 딱 있더라고요.  아휴 나는 우리 헌씨도 이런 데가 있는 줄 몰랐지 뭐예요?"

"그동안 종친회가 없었잖습니까? 그래서 일단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우리 같은 헌씨들을 규합하는 취지에서 그러니까... 아실런지 모르겠는데... 사실은 우리 헌씨가 솔직히..."

"알아요, 저도 안다고요!"

"뭘 말입니까?"

"노비 집안이라는 거!"

"노, 노비 집안입니까?"

"아니에요? 그럼?"

"아닌 것보다 자세히는 모르겠... 아니 그렇다고 노비일 것까지야..."

"세상에 노비래요, 노비! 모르셨어요?"

"누, 누가 그럽디까?"

(28-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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