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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고전 유람 - 이상한 고전, 더 이상한 과학의 혹하는 만남
곽재식 지음 / 북트리거 / 2022년 8월
평점 :
똑같은 풍경도 누가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어요.
SF 소설가 곽재식 교수님을 우연히 방송 프로그램에서 봤는데, 괴심 파괴자로 활동하시더군요. 과학적 근거가 타당하다고 납득할 때도 있지만 미스터리의 정체를 억지로 끼워맞추는 경우도 있어 웃음을 유발하네요. 이 책 역시 한국의 옛이야기 중에서 신기하고 이상한 사연들을 소개하면서 과학 지식을 접목하고 있어요. 일명 '이상한 고전, 더 이상한 과학의 혹하는 만남'이라고 하네요.
원래 월간 <고교독서평설>에 2021년 일 년간 매달 '이상한 고전, 신통한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연재했던 이야기 열두 편과 추가로 몇 편의 글을 더해 이 책이 완성되었다고 해요. 학생들을 대상을 쓴 글이라서 재미와 교육이라는 두 마리 토끼가 담긴 책이라서 전 연령대를 만족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책 속 삽화들이 귀엽고 깜찍한 제 취향이라서 마음에 쏙 들었네요.
괴담을 좋아하다 보니, 조선판 엑소시스트인 「설공찬전(薛公瓚傳)」 (1511)이 흥미로웠네요. 한국문학사에서 본격적인 한국 최초의 소설집은 김시습(1435~1493)의 「금오신화」 이며 보통 15세기경에 정착된 것으로 보는데, 창작 소설이 대중적으로 크게 유행한 시기는 한글 소설이 널리 유통되던 조선 후기라고 해요. 이상한 건 「금오신화」와 조선 후기의 「홍길동전」 사이에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100년 정도의 시간적 공백이 있다는 거예요. 왜 그럴까라는 의문에 답을 구할 때 단서가 되는 소설이 바로 「설공찬전」이라고 해요. 그 내용을 살펴보면 세상을 떠난 설공찬과 그 누나의 혼백이 사촌 설공침의 몸속에 들어가서 그의 입으로 둘의 이야기를 전하며, 설공침을 괴롭힌다는 이야기예요. 귀신 쫓는 사람이 김석산이 설공침으로부터 설공찬 남매의 혼백을 쫓아내려다가 실패하는데, 이때 혼백이 들어왔다 나간다는 설정을 뇌과학적으로 해석하고 있어요. 죽은 설공찬의 정신으로 설공침이 말을 하려면 설공침의 머릿속에 있는 수많은 뇌세포 중에 브로카 영역과 베르니케 영역의 뇌세포들이 죽은 설공찬의 뇌세포 상태와 똑같이 바뀌어야만 가능해요. 또한 한 사람의 정신이 다른 사람의 정신으로 바뀌려면, 옥시토신, 세로토닌뿐 아니라 감정, 기분, 기억에 관여하는 화학물질이 단숨에 생겼다가 사라져야 해요. 과거에는 귀신 들림 사건을 신비로운 일로 여길 수 있지만 뇌과학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인 거죠. 여기서 놀라운 부분은 문학적인 상상력과 사회비판적 요소예요. 남녀가 평등한 저승의 모습을 그려내어 조선의 신분제 문제, 남펴 차별 문제를 신랄하게 지적했으니, 조정에서는 요망한 내용이 담긴 불온서적이라며 불태워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대요. 겨우 소설 한 편 때문에 이토록 과한 처벌을 했다니, 소선 시대 소설 창작이 움츠러들고 쇠퇴한 이유를 알 것 같네요. 이렇듯 고전문학 속에 담긴 시대상과 역사를 살펴보고, 더 나아가 과학자의 시선으로 예리하게 진실을 파헤쳐가는 재미가 있네요. 물론 너무 분석해서 김이 빠지는 부작용도 있지만 흥미로운 과학의 세계를 발견하는 계기도 됐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