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왕자 - 내 안의 찬란한 빛, 내면아이를 만나다
정여울 지음 / CRETA(크레타) / 202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미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쳐보는 편은 아니지만 유독 여러 번 읽은 책이 있어요.

처음 읽었던 십대 시절에는 그 모든 것이 진실이라고 믿었어요.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와 어린 왕자의 만남부터 어린 왕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신기하고 놀라웠어요. 마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어린 왕자만 기억했던 거죠.

어른이 되고나서 어린 왕자를 다시 읽었을 때는 좀 슬펐어요. 어쩌면 어린 왕자는 인간의 세계에 실수로 떨어진 천사일 거라고, 덕분에 우리는 지옥 같은 세상에서 천사의 축복을 누린 거라고... 하지만 천사에겐 너무나 가혹한 벌이었고, 아마 많은 것들이 힘들었을 거라고, 그러니 떠날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그래도 희망을 품고 있는 건 어린 왕자가 소행성 B612 로 돌아갔을 거라는 거예요.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소행성이 우주 어딘가에 있는데, 지구별에 떨어져서 과거의 기억을 잊어버린 게 아닐까요.

《나의 어린 왕자》 는 정여울 작가님의 에세이예요.

내 안의 찬란한 빛, 내면아이를 만나는 여정을 보여주고 있어요. 처음 어린 왕자를 만난 건 열네 살, 중학교 1학년 어느 겨울날이었고, 다 읽고 나서 이유도 모른 채 꺼이꺼이 울었다고 해요. 오랫동안 그 눈물의 의미를 몰랐는데 어른이 되어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내면아이 inner child'라는 개념을 알게 되면서 그때의 감정을 해석할 수 있었대요. 놀랍게도 '성인자아'가 '내면아이'에게 말을 걸어 대화를 할 수 있었고, 그 내용을 우리에게 고스란히 들려주고 있어요. '성인자아'의 이름은 루나, '내면아이'의 이름은 조이예요. 저자가 어릴 때 겪은 마음의 상처들을 보면서 깊은 공감을 했어요. 엄마에게 요구한 촌지를 받지 못했다고, 그 분풀이를 아이에게 했던 선생님의 일화는 읽으면서 몹시 화가 났어요. 비슷한 경험이 있는 데다가 저 역시 그때의 상처 때문에 어른들에 대한 불신이 커졌던 것 같아요. 나쁜 어른만을 탓해야 하는데 어른 자체가 싫었으니, 그래서 어른이 된 나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 책은 정여울 작가님과 어린 왕자 그리고 내 안의 내면아이가 함께 하는 심리탐험이라고 볼 수 있어요.

솔직한 체험담을 듣노라면 저절로 내면아이가 깨어나는 것 같아요. 책 속에는 다양한 질문들이 나와 있는데, 그 아래 빈 칸에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 책은 어딘가에 잠들어 있는 내면아이를 깨워 마주보며 대화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어요. 그동안 외면했다는 건 내면아이를 만나기 두려웠다는 뜻일 거예요. 왜냐하면 내면아이는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울다가 지쳐 쓰러진 내면아이를 이제서야 만날 용기가 생겼네요.




루나 : 비커가 깨진 순간, 선생님의 그 차가운 눈빛을 영원히 잊을 수 없지. 선생님의 이름도, 선생님의 얼굴도, 선생님의 목소리도 정확히 기억나. 사람을 그 자리에서 완전히 얼어붙게 하는 맹렬한 차가움을 간직한 목소리로, 선생님은 나에게 말했지. "또 너니?" 난 이해할 수 없었어. 내가 무얼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애한테, 왜 '또 너니'라고 말했는지. 게다가 비커가 깨졌는데, 열한 살짜리 아이인데, 나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가가서 괜찮냐고, 다치지 않았냐고, 그것부터 물어볼 것 같거든. 그런데 쉰 살이 넘은 어른이 열한 살짜리 아이를 그렇게 찍어놓고 미워한다는 것이 지금도 잘 이해가 안 돼. 아무리 촌지에 목마른 닳고 닳은 사람일지라도 말이야.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조이 : 루나, 너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구나. 어른이 되어도 다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는 거구나. 어쩐지 마음이 놓여. 어른이 되면 다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줄 알았어.

루나 : 응, 아무리 모든 정보를 종합해서 생각해 봐도, 쉰 살이 넘은 어른이 어린아이를 그토록 격렬하게 미워할 수 있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는 않아. 그리고 사람은 자기 마음을 비춰서 타인을 바라보게 마련이거든.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을 타인이 했을 때,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지.

조이 : 그래서 너무 착한 사람들은 사악한 사람들을 이해 못하는 거구나? 사악한 사람들은 착한 사람들을 이해 못하고, 자기처럼 나쁘고 고약한 구석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루나 : 맞아,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비춰서 타인을 바라보는 습관을 버리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에, 타인을 이해하는 데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거야.

(144-145p)


조이 : 루나, 넌 망가지지 않았구나. 넌 절대로 망가지지 않았구나! 넌 상처를 딛고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있구나. 얼마나 다행인지. 난 너무 두려웠거든. 내가 아주 차갑고, 타인의 마음 따윈 보살피지 않고, 나의 행복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웠어. 너무 많은 미움을 받아서, 어떻게든 미움받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웠어. 그런데 루나 너는 그렇지 않구나. ... 그 후로도 정말 많은 고통을 겪어왔지만, 넌 무너지지 않았잖아. 넌 너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해도 괜찮아. 넌 너 자신을 더 자주 칭찬해 줘도 괜찮아.

(152-153p)


♣ 어린 왕자의 말

"별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보이지 않는 꽃 한 송이를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나는 "물론이지"라고 대답한 뒤에 아무 말 없이 달빛에 비쳐 주름진 모래언덕을 바라보았다.

"사막은 참 아름답지." 어린 왕자가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사실이었다. 나도 옛날부터 사막을 좋아했다. 모래언덕에 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빛난다. ...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우물을 숨기고 있기 때문이야." 어린 왕자가 말했다.

나는 갑자기 모래의 그 신비로운 번쩍거림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나는 오래된 집에서 살고 있었다. 전설에 따르면 거기에는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누구도 그것을 발견해 내지 못했다. 어쩌면 찾아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 집은 마치 마법에 걸린 느낌이었다. 내 집은 가슴 깊숙한 곳에 하나의 비밀을 숨기고 있던 것이다. ...

"그래." 나는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집이건 별이건 사막이건, 그것들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야."

(156-158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