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러블 스쿨보이 1 카를라 3부작 2
존 르 카레 지음, 허진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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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헌트>를 본 뒤라서 첩보물이 더욱 실감나게 느껴지네요. 1980년대 우리나라 안기부 요원인 '박평호'와 '김정도'가 조직 내 숨어든 스파이를 색출하기 위해 서로 의심하며 비밀 작전을 펼치는 첩보 액션 영화인데, 시대적 배경을 안다면 어느 한 장면도 놓칠 수 없는 몰입감이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이 소설은 첩보 액션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준 명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오너러블 스쿨보이》 는 존 르카레의 장편소설이에요. 이 소설은 <카를라 3부작> 의 2부에 해당하는 소설이라서, 처음 읽는 독자에게는 살짝 혼란을 야기할 수 있어요. 영국 첩보 기관을 '서커스'라고 불렀는데, 첫 장면부터 서커스가 하이헤이븐뿐 아니라 방콕, 싱가포르, 사이공, 도쿄, 마닐라, 자크르타, 서울에서도 철수했음을 에둘러서 보여주고 있어요. 뭐지, 첩보물에서 첩보요원들이 사라진다고? 매우 당황스러운 도입부라서 어떤 상황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집중했던 것 같아요. 미리 대략적인 정보가 있다면 훨씬 쉬운 길이겠지만 혼자 꿋꿋하게 안개를 헤쳐나가는 방법도 나쁘진 않아요. 아직 읽지 않은 독자라면 카를라 3부작은 순서대로 읽기를 추천해요.

저자 존 르카레의 본명은 데이비드 존 무어 콘웰로, 1931년 영국 항구 도시 풀에서 태어났고, 1959년부터 영국 외무부에서 근무하는 동시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당연히 필명을 쓸 수밖에 없었겠죠. 1961년 첫 번째 소설 『죽은 자에게 걸려 온 전화』 를 발표했는데, 당시 그는 실제 유럽에서 활동하는 영국 정보부 MI6 비밀 요원이었대요. 굉장히 놀랍죠? 현직 첩보원이 자신의 경험담을 소설로 쓰다니 대범한 것 같아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1974), 『오너러블 스쿨보이』 (1977), 『스마일리의 사람들 』 (1979) 이 세 작품이 카를라 3부작이에요. 1부는 모종의 사건으로 정보부를 사직한 조지 스마일리에게 부서의 스파이를 색출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는 내용으로, 1979년 영국 BBC에서 알렉 기네스 주연의 드라마로 제작되어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3년 뒤 속편 '스마일리의 사람들'도 제작되었대요. 1부는 2011년 영화로 제작되었고, 게리 올드먼이 조지 스마일리, 콜린 퍼스가 빌 헤이든,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피터 길럼 역을 맡았아요. 우와, 이 영화의 원작이었다니 신기하네요. 우리나라에는 2005년 '열린책들'에서 정식 출간되었고, 2부는 2020년 7월 열린책들에서 "오너러블 스쿨보이"로 새롭게 번역본이 출간되었어요. 3부작 중 가장 주목을 덜 받은 편이라 BBC 드라마 제작에서도 빠졌다고 해요. 음, 안타깝게도 2부를 처음 읽다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해요. 첩보 영화하면 제임스 본드를 떠올리는 건 대중들이 열광할 만한 매력을 지닌 주인공이니까, 그만큼 주인공의 아우라를 무시할 수 없어요. 제임스 본드는 알면서 존 르카레 원작 영화의 주인공을 몰랐던 건 아무래도 핑계 같지만 주인공 탓을 해야 될 것 같아요. 제임스 본드가 양지에서 활동하는 스파이라면 존 르카레의 스파이는 음지형 인물들이라는 분석이 있어요. 유쾌하고 멋진 스파이로 그려낼 수도 있지만 존 르카레의 방식도 의미 있게 다가오네요. 냉전 시대가 낳은 첩보전, 현실 속 스파이는 씁쓸한 그림자였을 테니까요. 존 르카레는 냉전 종식 후에도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권 관련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 정치 현안에 대해서 자주 의견을 냈다고 해요. 이라크 전쟁과 브렉시트, 도널드 트럼프를 강하게 비판했다고 해요. 어쩌면 그의 소설은 우리가 쉽게 즐겼던 첩보 액션 영화와는 달리, 지독한 현실을 보여주는 하나의 창구였는지도 모르겠네요. 우리가 착각해선 안 되는 진실, 진짜 스파이와 제임스 본드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네요.

《오너러블 스쿨보이》 는 스파이 색출 직후 카를라의 흔적을 쫓는 조지 스마일리와 그의 공작원 제리 웨스터비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어요. 왠지 두 주인공 덕분에 영화 <헌트> 의 연속작을 보는 기분이었네요. 1부에서는 팅커 테일러에 조역으로 등장했던 기자 겸 첩보원 제리 웨스터비가 주인공이며 책 제목도 그를 의미해요. 웨스터비는 덩치에 맞지 않는 유순한 성격이라 '스쿨보이'라고 불렸는데, 그 앞에 '오너러블 Honourable'을 붙인 건 귀족 출신임을 드러내는 호칭이자 사회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다하려는 고결한 정신을 담은 것이라고 하네요. 저자는 1989년 7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 그의 소설에 대한 가장 적합한 표현인 것 같아요. 우리가 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내가 10년 후에 이 책을 집어 드는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그 대답은 내 기억 속의 슬픈 미소와 같다.

... 시간을 초월하는 것은 배신밖에 없는 듯하다."

(16p)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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